안녕하세요.
올해 박사 졸업 예정인 사람입니다.
학위 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니 마음이 붕 떠서 일이 손에 잘 안 잡히고, 다른 대학원생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김박사넷을 자주 들락거리네요 ㅎㅎ
아무래도 익명 게시판이다 보니, 최근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글들이 많이 보이네요.
그래도 국내에서 제일 활발한 대학원생들의 커뮤니티인 점을 생각하면, 최대한 대학원 생활과 관련된 좋은 정보들이 많이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이유로, 대학원 생활 동안 뼈저리게 느끼고 지금까지도 큰 깨달음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글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작성하고자 하는 내용은 '연구 보고' 활동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것 입니다.
연구 보고 활동은 랩 미팅, 또는 교수님과 진행하는 개인 미팅 등을 의미합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각자 처해있는 환경, 연구실의 분위기, 지도 교수님의 성향에 따라 전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내용들일 수 있는 점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연구 보고는 결과보다는 과정 위주로
우선 랩 미팅, 또는 교수님과의 개인 미팅 등 본인의 연구 진척 사항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연구실 내 미팅에 한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구실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첫 연구실 미팅 발표를 들어보면 대다수가 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연구의 '결과'만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이지요.
아주 멋지게 그려진 결과 그래프와 FEM 해석 결과로 나온 형형색색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professional 합니다.
그리고 그걸 본 지도 교수님은 한마디 하십니다.
"...그래서 뭐? so what?"
이런 반응에 대한 이유는 크게 봤을 때 대부분 동일합니다.
'연구 내용을 들은 타인들이 반응할 요소가 없는 경우'이죠.
연구에 대한 피드백은 나의 생각, 즉 본인이 생각한 연구 결과에 대한 '결론'을 전달할 때 이루어집니다.
결과와 결론은 다릅니다. 결론은 연구 결과에 대한 연구자 본인의 의견과 고찰, 통찰이 담겨있는 마무리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단순한 '결과'만을 보여주게 되면 교수님을 포함한 다른 청자들이 피드백할 부분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래서 뭐 어쩌란 거죠?...' 라는 반응이 나오기 일수 입니다.
연구 내용에 대한 양질의 피드백을 얻기 위해선 이런 연구 '결론', 즉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똑같은 결과 그래프를 보더라도, 이리보고 저리보고...이렇게 저렇게 데이터 처리를 해보고...하면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저는 '연구'의 본질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니까요.
또 다른 상황으로는, 그런 결과들을 얻기 위해 본인이 적용한 가정들, 또는 시뮬레이션 및 실험 조건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연구 결과가 아무리 좋다 한들, 그 이전에 먼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신뢰성'입니다.
이러한 신뢰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내가 어떤 과정으로 해당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입니다.
즉, 본인의 연구 '과정'을 잘 설명하고 전달해주는 것이 결과를 멋있게 포장할 때 보다 더 의미있을 때가 많습니다.
연구 과정이라고 해서, 자신이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활동 (참고 문헌 공부, 실패한 사례 등)을 다 언급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가 설정한 가정들, 그리고 내가 계산이나 실험에 적용한 조건들이 가지는 물리적인 의미, 그리고 내가 이러한 것들을 '선택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돌다리를 하나하나 두드려보고 건너듯이, 내가 설정한 사소한 옵션들 하나하나 모두 공부해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실제 연구 능력도 이러한 활동들로부터 많이 향상됩니다.
또한 교수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도 이러한 '연구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필수적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정말 바로 옆에서 연구를 하나하나 같이 진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중간 설명없이 결과만 보여주는 것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설령 교수님이라 할지라도요...
때문에 본인의 연구실 미팅 또는 개별 미팅의 텀이 매우 길다고 판단된다면, 매 미팅마다 짧게라도 본인이 어떤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지, 어떤 수식이나 조건을 이용하고 있는지 간단하게라도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추후에 나올 수 있는 공격적인 코멘트들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2. 멘탈 무너지지 맙시다...
어쩌면...대학원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그리고 인생 전체를 봤을 때 가장 많이 숙달되어야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랩 미팅이든 개별 미팅이든, 여러분들은 연구 내용에 대해서 반드시 질타를 받게 됩니다. 특히나 지도 교수님으로부터요....
정말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모진 피드백을 듣고 나면 등에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고
그날 하루는 뭘 해도 기분이 울적하고 심할 경우는 그 한 주가 엉망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도 교수님이 호랑이 교수님이셔서 정말 많이 혼났습니다...)
본인의 감정이 depress되는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럴 때 일 수록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애초에 생각해보면, 나의 연구에 대해서 칭찬만 들으려고 연구실 미팅이나 개별 미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연구 과정에 대해서 잘못된 부분이나 해석이 있는 부분이 고쳐지기 위해선 당연히 비판이 있어야 하며,
그런 과정이 마냥 긍정적이고 즐거운 방법으로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과 반하는 의견을 들었을 때는, 설령 그 의견이 매우 친절하고 듣기 좋게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요지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잘 걸러 듣고, 코멘트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의 연구에 피드백들을 반영하고, 지도 교수님을 만나는 일, 그리고 미팅하는 일들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서 매 미팅 때마다 우울함을 느끼고, 사사건건 감정 소모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면 정말 위험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신적 고통이 개인적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힘들다고 판단이 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당장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교수님의 인성이 개차반이여서 학생들에게 인격 모독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에 대해선...할 말이 없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내가 지도 교수님의 성향을 바꿀 순 없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 밖에 없는...안타깝지만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멘탈 관리...대학원 생활에 있어서 정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대학원 생활을 크게 보면 결국 '자기 관리'를 하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내가 나의 신체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관리하지 못한다면, 누구는 쉽게 넘어가는 일들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벽과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항상 마음을 잔잔한 호수와 같이 유지하는 방법을 기르시면 좋겠습니다.
누가 돌을 던져도 금방 평정을 되찾을 수 있게끔 말이죠...
뭔가 글 끝에서 내용의 초점이 많이 흐려진 느낌이 듭니다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는 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2021.08.02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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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