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월, 지금 연구실에서 2개월간 짧은 인턴을 시작하여, 잘 챙겨주시는 선배와 교수님께 좋은 호감을 가진 상태에서 봄 여름 사이에는 학교 네임밸류가 더 높은 연구실에서 인턴해보았지만 좋지 못한 대인관계로.. 짧은 기간 정신적으로 불안해져서 다시 원래 호감이 있던 실험실로 돌아가게 되었고 21년 9월부터 지금의 실험실에서 풀타임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입학은 올해, 22년 3월에 들어왔고 체감상 2년차 같은, 꽉 채운 1년차의 석박사통합과정생 입니다 분야는 바이오구요, 석사로 졸업해서 바로 취직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교수님의 권유와 열정으로 석박사로 바꿔서 빠이팅하면서 입학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중요한 일인지 은연중에 고민하게 되었고 중요한 일이니 빨리빨리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은근한 압박에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또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면 시간과 청춘을 버리는 기분에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당장 급한 보고서, 기말고사 준비, 발표 준비.. 이런 것들이 겹쳐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연말인데도 계속해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지금의 여러 일이 겹친 위기 상황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막연하게 연기되지 않을까?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 회피하려고 하고요 왜이렇게 게을러졌을까 자책했는데, 작년에 처음 풀타임 시작할 때 일기를 읽어보니 참 꼭두새벽에 나가면서도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였는데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니 미처 몰랐지만 입학한 이후로 우울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10개월 가량 게임에 강하게 중독되었었는데 실험 바빠지면서 게임을 끊었더니 오히려 금단증상처럼 우울증이 올라온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 잘 하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는데 너무 잘 모르는 분야에서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에 많은 충격과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점점 우울해진 것 같습니다 석사 1년차에, 공부도 일도 안 하고 하루에 반나절을 휴지를 끼고 사는 상황인데 통합과정이라고는 해도 6년, 길어지면 7년까지 보는 박사과정을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봤더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교수님 참 자상하시고, 해결할 일 있으면 끌어주시고 고민할 일 생기면 아이디어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잔병치레도 잦고 1년 반동안 작은 수술을 두 번이나 하는데 충분히 쉬게끔 잘 챙겨주시고 아프거나 힘든 일에 대해 기다려 주시고 보채지 않으시는 분인데 감사한 분인데 마음의 병이 생겨서 죄송스러운 마음... 박사 해보겠다고 했는데 부응하지 못해서 부끄러운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마음이 나약해서 이러나, 석사 하고 취직한다고 거기서는 마냥 해맑게 살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도 있고, 요즘 좀 움직임이 굼떠진 것, 말을 횡설수설하게 되는 경향성, 잦은 이명, 폭식, 2시간 이상 증가한 수면 시간 항상 몸살기가 있는 것처럼 만성적인 두통과 근육통 등등 나는 우울증이라고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데도 뒤늦게 알아챈 것 같아서 제가 저에게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그렇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고민하는 학부생분들께, 만약 열정이 가득하신 분이라면 대학원 정말 힘들고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좀 잘 생각해 보시라 말씀 드려도 지금 대학원 가서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훌륭한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과 희망에 (물론 저는 낙관적인 사람들 참 좋아합니다, 제가 비관적이어서 좋은 이야기를 못 해줘서 도리어 미안하더라구요) 이런 이야기 잘 안 들리실 거에요, 저도 당시에는 나는 마음이 강해서 괜찮다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이야기 남한테 잘 안 하고 들어주는 타입의 사람이다보니 힘든 일이 생겨도 계속 삭히다가 맛이 가버린 모양이에요
다만 대학원은 공부하는 시간, 일하는 강도 이런 것들 육체적으로도 쉬운 곳이 아니지만 정말 알게 모르게 매일 야금야금 정신이 갉아먹힐 수가 있어요 요즘 또 한창 대학원 입학이나 인턴 준비하시는 분들 많을 거에요.. 종강 시즌이고 입학하시게 되더라도 상담 센터 자주 다니고,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연구노트만 쓰지 마시고 정서에 대한 일기도 써 보세요 요즘 내가 좀 우울한가 뒤돌아볼 수도 있지만, 저는 예전 일기를 보니 내가 지금 정상이 아니구나 알게 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당장 다음주에 중요한 발표, 시험, 급한 실험, 미팅 등등 일정이 겹쳐 있는데 이런 것들만 마무리하고 정신과에 방문해서 상담 진료 받아보려고 합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다보니 익명을 빌려서 또 글을 쓰게 되네요 다들 평안한 연말 되시고, 내년에는 건강하게 하시는 일 다 잘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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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2022.12.17
글만 보았을 때, 대학원 생활이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게임 중독 영향이 큰 것 처럼 보입니다.. 게임에 중독된 시기가 10개월 가량이라면 본인이 풀타임을 시작할 때쯤 아닌가요?.. 솔직한 말로, 대학원 생각하시는 분들께 비관적으로 말할 자격 없으시다고 생각합니다
대댓글 3개
2022.12.17
게임 중독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한창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기에 평소 즐거운 일이 없고 자극이 없어서 더 빠르게 중독되었습니다 도피성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했다기보다는 딴에 재미있는 일이 퇴근 후 게임 그거밖에 없으니 못 놓고 계속 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제 증상들이 게임 중독 영향이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고, 게임 끊은지 2개월이 넘었지만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 별로 안 듭니다 오히려 그렇게 재밌어하던 게임조차도 귀찮아요, 다시 깔고 접속하는 생각 하기 싫을 정도로 무기력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의학적 근거로 삼는 우울증 자가진단 검사 결과 아주 안 좋게 나와서 우울증인 것 같다 생각했고, 언제부터 정신과적으로 안 좋은 증상이 있었나 되짚어보니 게임 중독이 있었던 것뿐이라 생각합니다
대학원 생각하는 분들께, 진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시라 비관적으로 말할 의도 없었습니다 비관적으로 말해도 열정에 가득하신 분들은 이런 비관적인 태도에 전염이 안 될 테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나 너무 힘들고, 대학원 정말 힘드니까 오지 마라ㅡ 이런 어조의 글은 저도 참 싫어합니다 대학원 준비하시는 분들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울은 어디에나 있는 흔한 질병상태이고 대학원이 더 취약한 것은 사실이니 더 경계심을 갖고 주의깊게 살피셔서 아픈 일 미연에 방지하자 라는 말씀입니다
길다면 긴 1년 반동안의 히스토리에서 게임 중독이 길었다는 그것 하나로 게임 중독 때문에 마인드 망쳐놓고 대학원 탓 하는 사람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모욕적으로 느껴집니다
2022.12.17
10개월 가량 게임에 강하게 중독되었었는데 실험 바빠지면서 게임을 끊었더니 오히려 금단증상처럼 우울증이 올라온 것 같아요.
이 대목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말씀하신 증상들이 우울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여, 그 우울증의 원인이 게임을 끊음으로써 발생하셨다고 하셔서요.
사실 저 또한 3년 전 학부 4학년 시기에 게임에 강하게 중독되었었습니다. 정말 다때려치고 게임만 했었습니다. 이로 인해 4학년 이전 4.2의 학점을 3.8까지 떨어뜨리게 되었고, 졸업 직후 대학원 진학에도 실패하였습니다. 게임을 끊은 뒤에 말씀하신 무기력증과 여러 이상 사항들 또한 저에게도 비슷하게 있었습니다. 게임에 10개월 가량 강하게 중독되었다고 하셨고, 후유증도 저와 유사한 것 같아, 저와 비슷한 수준의 중독으로 생각하여 위와 같이 댓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그때 당시 환경의 문제가 아닌 온전히 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그때 당시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환경에 놓여있긴 하였습니다.) 그래서 글쓴이분도 대학원이란 환경의 문제가 아닌 게임 중독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답글에서 언급하신 바에 따르면, 저보다 훨씬 약한 수준의, 게임 중독 조차도 걸리신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글 내용을 오해하여, 공격적으로 댓글을 작성한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2022.12.18
공격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을 사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원 출퇴근 시간을 불성실하게 조정해 가며 게임을 하거나, 잠을 극단적으로 줄이거나, 이 때문에 퍼포먼스가 크게 문제 생기기도 하구요, 월급에 인센티브가 들어오면 무리해서 전부 게임에 붓고... 너무나 전형적인 게임 중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적이 나타나지 않는 연구에 비해 게임이 강한 자극이 된 것 같고 올봄에 정말 좋지 않은 일이 터지면서 일시적으로 우울해진 직후 더 급격하게 게임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가을 되면서 게임 내 스펙이 포화되어서, 쉽게 리워드가 주어지지 않는 정도가 되자 미련없이 게임을 삭제하고 한번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발견하여서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기간이 짧게나마 있었는데, 그마저도 10월 말에 좋지 않은 사건이 연달아 터지자 운동을 관두게 되었고 엔돌핀 수급처가 사라지자마자 심각한 무기력이나 신체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게임 중독으로 인해 망가진 인생을 살았던 기간이 물론 있지만, 현재의 증상은 게임 중독 금단 증세가 아니라 게임으로 도피하였던 우울 증세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왜 게임중독이 아니라 우울증이라고 호소하는지 자세히 적지 않은 탓에 오해하신 소지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게임 중독으로 고생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처럼 기질적인 요소가 있어서 게임 중독에 취약하셨던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사람이 전부 내 문제 인 것 같아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를 야금야금 괴롭혔던 사건들이 꽤 많습니다.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게임에 중독되었던 적이 계시다면 지금은 괜찮으신지 한번 돌아보시고, 전부 본인 탓이라 자책 마시고 평안한 밤 보내셨으면 합니다
쑥스러운 갈릴레오 갈릴레이*
2022.12.18
일단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해보시는게 먼저 같습니다. 글만 보면 우울증 치료가 먼저고 그 다음에 현실의 진로를 결정하는 게 맞아보여요. 지금 상태에서 판단하기 vs 치료받고 판단하기 둘 중에 후자가 낫습니다.
대댓글 1개
2022.12.18
네... 맞습니다. 다만 석박에서 석사 전환하려면 적절한 시기가 곧 지나가서 성급하게 결정하려는 것 같습니다 우울 증상을 자각하기 시작한 게 금요일 저녁이라, 병원도 못 가고 주말 내내 갇혀서 생각당하고 있네요 ㅎㅎ
2022.12.23
우선 뚜렷한 목표의식, motivation이 없이 어쩌다 대학원생으로 방향감각 없이 휩싸여 그저 흘러 간다는 느낌 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에 대한 재미가 필요합니다. 다음날 아침 어제 했던 연구에대한 결과가 궁금해서, 오늘 무슨 새롭고 재미 있는 일에 대한 기대로 아침이 기다려져야 올바른 연구자(청년)의 자세입니다. 열정이 결핍된 자신은 뭔들 재미가 있겠습니까? 다시 로드맵도 짜고 결단과 배짱을 키우세요. 어쩜 다소 편하고 느긋함에 빠져 호강에 받친게 아닌가도 짐작된다면 과한 소리인가요. 암튼 파이팅 하세요. 매사에. 살다보면 가장 싫고 하찮다고 지나친 일과 동행해야 할 일도 있답니다. 일상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화이팅! 졸업한지 오래된 시골의 한 교수가 전합니다.
2022.12.24
교수가 자상한대목에서 비추갈기고싶었습니다만 ㅠ 저도 석사에서 석박전환하고 다시 통합포기해서 석사로 돌린입장에서... 그결정이 쉽지않은결정이란걸 잘 이해하고있습니다.
우울증은 약을 먹어야 일상생활 되거든요. 저는 우울 경험이있어서 대학원와서 걸렸을땐 바로 대처할수 있었어요.. 꼭 병원가서 약 챙겨드시고 (정신과의사에 큰기대는 말구요)이상한 생각을 일단 재워버리고 석졸에 필요한 일들 차근차근 해결하다보면 박사전환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드실건데요 그때를 조심해야합니다.
2022.12.17
대댓글 3개
2022.12.17
2022.12.17
2022.12.18
2022.12.18
대댓글 1개
2022.12.18
2022.12.23
202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