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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자퇴생 공대 휴학생

소심한 제인 오스틴*

2023.12.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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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를 자퇴하고 전자공학과에 신입학한지도 1년이 지났네요
제 나이는 벌써 29을 바라봅니다. 다른 분들은 석박하고 계실 나이이겠지요
학창시절, 너는 공부말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는 부모님 말씀과 전교 1등을 못하면 날라오는 폭력 폭언에, 말 그대로 공부만 해서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피와 내장을 보면 숨을 못쉬는 나약한 인간이란걸 예과 2학년 카데바 실습할 때야 알게되었습니다
휴,복학을 반복하고 부모님을 힘들게 설득해서 자퇴했었지요
공부말곤 할 줄 아는게 없었는데 이마저도 내 길이 아니라 하니..ㅎ
바로 도피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때마침 코로나 발발, 백신도 못맞는 몸이라 유학 비자 발급도 안 됐습니다ㅎㅎ
그렇게 2년인가 3년을 집에 박혀만 있었어요 그래도 늘 해보고 싶었던 일본어 공부는 원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ㅎㅎㅎ

언제까지 시간을 버리며 살거냐, 대학은 졸업해야하지 않겠냐는 어머님 말씀에, 수능 원서 접수 마감 직전에 접수하고 부랴부랴 공부해서 대학에 왔습니다
과는 전자공학과. 이유는 없었어요, 뭘 하고싶은지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아버님이 전자공학과 교수님이라 선택했어요
아버님이 계신 대학을 갔으면 좋았겠지만 수능 성적이 모자라서 낮은 대학을 왔습니다
부끄러운 새끼라던 아버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네요
그래도 1년동안 행복했습니다. 캠퍼스라함은 좁디좁은 메디컬 캠퍼스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제게, 넓은 캠퍼스와 자유로운 학생들의 모습은 감동이었지요

얼마전 제 지도교수님과 면담이 있었습니다. 제 형편없는 성적표를 보시며 '넌 뭘하고싶니?'라고 물으셨죠.
말문이 막혀 어린 시절 (아마도) 관심이 있었던 것 같은 로봇 이야기를 겨우 꺼냈어요. 교수님은 저를 지그시 바라보시며
'넌 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니?' 라고 물으셨는데, 그 질문에는 겨우겨우 꺼낼 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친한 동생이랑 저녁을 먹었는데, 이 동생은 컴퓨터공학과를 다닙니다. 코딩을 아주 잘해요. 멋있는 녀석입니다.
동생에게 '넌 언제부터 코딩했어? 왜 코딩이 좋아?'라고 물었더니 '초등학생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어서 게임을 만들어 보고싶었어'라더군요

동생과 헤어지고 캠퍼스를 빙글빙글 돌다가 기어코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 한심스럽게도 아버님을 원망하며 울었습니다.
어린시절 뭔가 해볼 기회가 있었다면, 친구들이랑 뛰어놀 기회가 있었다면, 아버님께 반항하고 얻어맞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너무 궁금하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형편없는 20대 후반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요
대학을 다니는 1년동안 죽고싶은 마음이 치솟을 때마다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는데 이젠 알 것도 같습니다

이번 학기를 마치면 다음 한 학기는 휴학할 생각입니다. 집과 학교를 벗어나 무언가를 경험할 기회를 저에게도 주고싶어서요
부모님을 계속 원망하기엔 그 분들은 이미 늙어버리셔서, 제가 이젠 저의 부모가 되어주는 수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휴학 이후의 저는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을까요? 하고싶은 일이 생긴 사람의 얼굴을 하고있을까요?
이젠 다 제게 달린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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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개

2023.12.01

글만 읽어도 먹먹하네요.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대댓글 1개

소심한 제인 오스틴작성자*

2023.12.02

응원 감사합니다

2023.12.01

좋아하는 것이나 꿈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또래에 비해 졸업도 많이 늦고 방향성도 뚜렷하지 않아서 요즘 방황을 조금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앞으로 살아갈 날 중 지금이 제일 어릴 때라는 생각에 뭐든 해봐야지 다짐하고 있어요.
의대 자퇴하셨다 했는데, 글쎄요.. 그것도 제가 생각하기엔 용기이자 도전이 아니셨을까 싶네요.
같이 파이팅 해봐요

대댓글 1개

소심한 제인 오스틴작성자*

2023.12.02

살아갈 날 중 지금이 제일 어릴때라는 말 나이 먹고 들으니 정말 용기가 되는 말이었군요..ㅎㅎ 감사합니다

2023.12.02

큰결심하느라 고생하셨고 이제는 부모님의 꼭두각시가 아닌 본인을 위해 인생을 살면 됩니다. 그게 꼭 공부가 될 필요도 없구요. 파이팅하세요

대댓글 1개

소심한 제인 오스틴작성자*

2023.12.02

감사합니다

2023.12.02

자퇴를 계기로 삶의 큰 변화를 시도하고 계시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타인이 이끄는 삶에서 자신이 이끄는 삶으로 전환하는 게 쉽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쓰던 근육을 처음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근육이 늘어나는 느낌도 없고, 힘들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나니 근육이 붙고 그걸 재미로 느끼며 오래했던 것 같습니다.

작은 시도를 계속하면서 작은 성공의 경험을 동력으로 삼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주어진 20년 넘는 외길을 자신의 의지로 벗어나는 선택을 하셨고, 새로운 전공도 시도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사회가 정해준 트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보다 작은 시도는 충분히 잘 해내실거라 믿습니다.

한편, 언젠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버틴 인내심은, 앞으로 삶에서 마주하게 될 다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지금의 이 방황은 삶을 나의 것으로 돌리기 위해 언젠가 겪어야할 필연적인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삶의 고통은 필연적이며,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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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제인 오스틴작성자*

2023.12.02

남들은 어떻게 사는 지, 어떤 공부를 하는 지, 보고 모방하기 위해서 이 사이트 저 사이트 가입했습니다. 김박사넷도 그 중 하나였고요. 이젠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결심했기 때문에 이 시간 이후로는 들어오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선생님의 따뜻함은 탐이 나네요ㅎㅎ
잘 기억하고 있다가, 훗날 또다른 고통을 겪고있는 타인에게 이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12.02

진짜 철 없다..스스로 돈 벌어본적은 있음? 누군 학비 없어서 장학금 안 놓치려고 학부 내내 밤새서 공부하는데ㅉ

대댓글 3개

소심한 제인 오스틴작성자*

2023.12.02

종류는 다르더라도 모두가 각자만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가 선생님의 짐을 더 무겁게 느껴지게 만들었다면 용서하세요.

2023.12.02

글쓴분께서 다른 어느누구도 비난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글쓴분을 비난할 자격은 없습니다.

2023.12.02

힘들게 들어간 의대를 자퇴하는것도, 몇년간 방황하다가 20대 후반에 새롭게 시작하는것도 쉬운것이 아닙니다. 남의 고민과 결정을 그렇게 쉽게 철없다고 일갈하는 것이 진정 철없는게 아닐까요?

2023.12.02

고등학교 때 연세대 의대 간 친구가 자기도 공부 좋아서 한 게 아니라고 한숨을 쉬면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거 거짓말입니다. 저도 시험 볼때마다 만점 가까이 받으면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더 하고 싶어졌을 것 같거든요
저도 학부때는 공부가 재미없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대학원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매일매일이 즐겁습니다. 꼭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그런데 작성자님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은 학문의 테두리 안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부모님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지 말아주세요.

2023.12.02

안녕하세요, 저도 의대를 자퇴하고 타대에 진학한 뒤, 공학 대학원을 진학해 연구 경험을 가져 본 인원으로서 남일 같지 않게 읽었습니다. 글쎄요.. 의대를 진학 한 뒤 군대를 다녀오고 많은 관련 종사자분들을 만난 뒤로, 내 인생에서 부모님들 말만 듣다가는 인생 조지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요새도 별로 듣진 않습니다.

커리어적으로 성공하신 부모님이기에 존경하고 지나치게 귀담아 들었으나 그게 독이 됐습니다. 제 자신의 진로와 방향, 성미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않고 늙은 지식을 잣대로 이런 저런 조언을 이야기하고 저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대 자퇴생들이 생각보다 많죠. 그런 마당에 어디가서 못하면 인성이 문제거나 나약한 녀석 처럼 바라보는 인원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학점이 낮다면 학기를 밀어버리는 제도가 학교에 있지 않나요? 늦은 나이이긴 합니다만 정신을 다잡고 목표를 갖고 행동하는데 나이 때문에 원하시는 분야의 모든 대학원을 못간다느니 할 만한 나이는 아닙니다.

글을 보니 지금도 부모님에게 의존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자신의 삶을 연민을 가지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인 추천은.. 자기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세요. 그렇게 졸업하시고 대학원도 제대로 못가고 또 별 좋지 않은 현황에 놓이면 사람은 남탓을 하는게 편한 동물이기 때문에 부모님 탓을 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고, 또 그러셔야만 기회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시면서 새로운 방향을 잡고 주도적인 삶을 사는 모습으로 변화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갈 길도 멀고 힘든 길이 많지 않을까 지레 짐작이 갑니다. 건승하십시오.

2024.04.26

힘내시기 바랍니다.

2024.05.13

인생은 길고 깁니다. 지금부터 9to2로 3년 7년 15년 30년 하다보면 전문가 되실 것이니 너무 낙담 마세요.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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