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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연구원으로 성장하는 법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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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안녕하세요. 현재 실리콘밸리의 한 반도체 빅테크 A사에서 3년째 GPU 아키텍트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전엔 다른 반도체 빅테크 I사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 5년간 근무했고요. 미국에 오기 전엔 S사에서 연구원으로 11년간 재직했습니다. 석박사 모두 한국에서 했고요. 한국에서의 학위 + 경력만으로 실리콘밸리로 이직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까지 포함하면 세월이 벌써 20년이 넘는군요. 업계 고인물이네요. 운이 좋았던 건지 대학원때 했던 세부전공(그래픽스/GPU)을 커리어 내내 지금까지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가 생각나서 미국에서도 가끔씩 김박사넷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출신 연구실 평도 읽기도 했지요. 물론 요즘은 연구실 리뷰는 없어져 더 이상 그때의 재미는 찾을 수 없지만요. 지도 교수님도 이미 은퇴하셔서 랩도 없어졌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계시는 여러분들 중 혹시나 졸업 후 또는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향후 경력직으로 미국으로 이직을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까 글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미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왔는데,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어차피 미국에 올 것이었으면 1년이라도 빨리 왔으면 좋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대학원생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하면 최단 경로로 미국에 올 수 있겠다'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여러분 모두 석사, 박사과정이실 테니, 각 학위과정에서 주안점을 둬야 할 것들과 향후 한국 업계에 나갔을 때 어떻게 경력관리를 해야 할지를 정리해 볼게요(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향후 유학을 생각 중인 분들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 경로는 또 다른 테크트리를 타니까요. 순수하게 한국에서의 학위, 경력만으로 미국 진출을 꿈꾸는 경우만을 이야기합니다).


* 석사

아시는 것처럼 석사는 학부와 박사를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단계입니다. 따라서 향후 박사를 진학할지 안 할지는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석사 2년을 어떻게 보낼지 이른 시기에 그 방향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석사만 할 생각이면 ‘실무 역량’을, 박사까지 할 생각이면 ‘연구 역량’을 쌓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만 박사진학 유무와 상관없이 석사과정시 학술적 성취를 그렇게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업계에서 석사는 좀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하지도 않고, 학위 논문도 그다지 유심히 보지 않습니다.

대신 석사 2년간에 집중해야 할 것은 1) 전공 지식을 더 심화하고, 2) 실무 경험을 쌓고, 3) 소프트 스킬을 키우는 것입니다.

대학원 코스웍은 쉽게 간과되곤 합니다. 사실 조교, 프로젝트, 랩 잡일로 늘 바쁘기 때문에 석사시절 수업에 큰 비중을 두긴 어렵지요.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것이 아마 다겠죠? 그런데 대학원 코스웍 때 들었던 지식이 향후 엔지니어 커리어를 보낼 때 여러분의 '근본'이 되어줍니다. 학부 코스웍은 말 그대로 기초를 얕고 넓게 익힌 것이지만, 대학원 코스웍은 특정 도메인에 심화된 지식을 공부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향후 도메인 전문가로 거듭날 때 단단한 밑거름이 됩니다. 따라서 코스웍은 무조건 열심히 해두세요. 20년도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대학원 코스노트를 갖고 있어요. 갑자기 인터뷰가 잡혀 지식을 재정리할 때 다시 찾아보곤 합니다. 미국에서 현재 실무를 하면서도 그때 공부한 지식이 바탕이 되고 있고요. 물론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논문, 백서 등 많은 자료를 읽으면서 지식을 갱신해 왔고, 때로는 경쟁사 아키텍처 등은 문서 없이 추론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사고의 재료가 되었던 것은 대학원 코스웍에서 배웠던 지식입니다.

석사과정에서 실무경험을 쌓는 좋은 방법은 연구실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겠죠. 연구실 사정에 따라 프로젝트 결과가 논문이 될 수 없는 개발성 과제도 많을 겁니다. 저도 대학원시절에 이런 과제에 할당되곤 하면 연구실적이 안된다고 실망하곤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개발성 과제를 하며 가장 스킬 셋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실무 역량을 쌓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셔요. 설계 경험, 코딩 실력, 툴, 실험용 장비 쓰는 경험을 쌓는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학위 과정 중에 외부 인턴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산학 프로젝트 참여 경험을 미국 회사의 인턴십이나 코업 co-op(학생 신분의 계약직 직원)과 유사한 실적으로 영문 이력서에 기입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생은 반은 학생, 반은 직장인과 같은 삶을 삽니다. 코스웍을 소화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직장인과 유사하게 업무를 수행하죠. 또한 지도 교수,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연구실 생활을 하기 때문에 향후 회사에서 겪을 조직 문화를 일찍부터 경험하게 됩니다. 회사로 따지면 신입 단계이기 때문에 주로 누군가 지시한 일을 처리하겠지요. 하지만 이때부터 주도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연구 아이디어가 있으면 박사 선배나 지도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반박 시 자신의 논리를 갖춰 설득하는 방법을 키우는 것이죠. 미국 회사에서는 주니어 엔지니어들도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런 엔지니어들이 더 빨리 성장하고요.

이 세 가지만 잘해도 석사시기를 알차게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석사 졸업 후 바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바로 신분문제 때문이죠. 이후 업계로 진출해 도메인 중심적으로 경력을 쌓으시고 NIW와 같은 방법으로 신분 해결 후 적정한 때를 노리시면 됩니다.

* 박사

미국에서 박사졸업자가 진출할 수 있는 직군은 1)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2) 리서치 엔지니어 3) 엔지니어입니다. 모집 모수는 엔지니어 >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 리서치 엔지니어이고요. 이중 박사졸업 후 디렉트로 미국 이직을 할 가능성이 높은 직군은 역설적으로 모수가 적은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입니다. 바로 학위과정 중 '미국 인턴십'을 노려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만일 기회가 되어 실리콘밸리 빅테크 연구소에서 인턴십을 할 수 만 있다면 졸업 후 바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인맥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엔지니어 직군은 인턴십을 자주 뽑지도 않고, 있어도 박사과정들이 개발부서 인턴십을 꺼리곤 합니다. 인턴십 결과를 논문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런 개발부서 인턴십은 부서가 아니라 회사차원에서 모집하기 때문에 주로 자국 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요. 그래서 한국의 박사과정들에게 기회가 거의 돌아오지 않습니다.

빅테크 연구소에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인턴십을 하기 위한 확률 높은 방법은 바로 박사 1~2년 차에 좋은 논문을 써서 자신의 가시성을 높여두는 것입니다. 빅테크 연구소에서는 평소 학회에 발표된 논문의 저자들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리고 연구 인턴을 뽑는 시기가 되면 그들 중 현 연구소와 연구 주제가 밀접한 이들에게 인턴십 지원 제안 메일을 보내지요. 제가 I사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 근무할 때 한국의 대학원생들에게도 자주 연락을 하곤 했습니다. 좋은 논문을 발표하는 한국의 박사과정들도 많았으니까요. 이렇게 컨택이 되고, 면접을 통과하면 비자 + 이주지원을 받고 실리콘밸리로 건너와 단기 인턴십을 하게 됩니다.

인턴십을 위해 박사 저 연차 때 좋은 논문을 써야 하는 이유는, 3년 차 이후가 되면 졸업시기랑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인턴으로 뽑고 싶어도 졸업과 맞물려 해당 학생에게 기회가 무산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그러니 가능한 저 연차 때 확실한 논문 1편을 써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1~2년 차 때 대표 논문을 발표해야, 그 논문으로 3년 차 때 인턴을 잡고, 학교로 돌아와 4년 차를 마치고 졸업 후 풀타임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인턴을 하면 빅테크 연구원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를 레버러지 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맥이 매우 중요해요. 인턴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공동 연구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들 학위 과정에서 연구에만 매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훌륭한 연구실적을 쌓은 뒤 졸업시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이를 바탕으로 빅테크를 노려보곤 합니다. 하지만 실적만으로 그 관문을 돌파하기 쉽지 않아요. 추천을 해줄 인맥이 없어서지요. 결국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누군가에게 부탁해 어떻게 레퍼럴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강력한 추천을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전히 허들은 높습니다.

만일 학위과정 중 인턴십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학회 참석 시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해 빅테크 인사들과 교류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주저자로 논문을 써서 발표하세요. 그 발표가 인상적이면 해외 연구원들에게도 각인될 여지가 생깁니다. 흔히들 학회를 외유정도로 생각하곤 하는데, 학회 끝나고 어딜 여행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1명이라도 더 만나서 안면을 튼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저자로 참석하는 것이 좋은 것은, 일단 논문을 발표하면 관심 있는 인사들이 먼저 찾아와 질문도 하고 대화의 기회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회 참석 기회가 있다면, 단순 참석을 넘어 포스터라도 써서 발표하세요. 실적 때문이 아니라 면대면 네트워킹을 기회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명함도 미리 준비하셔서 많은 사람과 교류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향후 학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널보다는 학회에 논문을 많이 쓰는 게 낫습니다. 졸업 요건을 위한 최소 조건을 충족하고, 나머지는 모두 학회에 발표하세요. 학회 논문이 가시성이 높습니다. 빅테크 연구소들도 학회 논문 위주로 연구 경향을 좇습니다. 저널 논문은 제출-리뷰-출판의 사이클이 길어 시의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면대면 네트워킹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는 콘퍼런스 센터 같은 곳에서 열리는 대규모 학회보다는, 작지만 권위 있는 소규모 학회에 반복해서 논문을 내는 것이 유리합니다. 학회 기간 동안 참석자들과 계속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아시는 것처럼 박사과정은 독립 연구자로 거듭나기 위한 훈련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연구자는 결국 논문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향후 실리콘밸리를 지향한다면 논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학위기간 동안 어떻게든 자기 홍보를 잘해서 네트워크를 쌓아야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

* 현직

석사나 박사 졸업 후 한국에서 경력을 시작하면 한 가지만 유념하세요. 바로 향후 실리콘밸리 진출을 노릴 때까지 '도메인 전문가'로 거듭나겠다고. 자신의 이력에서 바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했다는 서사를 보여줄 수 있도록 경력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도메인 전문성을 보여주는 길은 커리어 패스상 도메인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 업계에서 쉽지 않습니다. 조직개편등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일을 해야 할 일도 비일비재하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가능한 이를 고수하세요. 커리어 도중 도메인을 자주 바꾸면 이력서상에서 전문성은 약화되고, 결국 자신이 얕게 거쳐왔던 다양한 도메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스킬 셋'으로만 진출을 노려야 합니다. 도메인 전문가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스킬 셋 직군은 미국에 이미 후보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엔지니어에게 기회가 돌아오지 않아요. 자신만의 전문 영역, 도메인을 확보하고 이 전문성을 통해 진출을 시도하면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개개인별로 사정이 다르니 지금까지의 조언이 해당 사항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 브런치에 한국의 공학도, 현직자들을 위해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주시고요. 그리고 브런치에 Q/A 채널을 열어 두었으니 혹시 질문 있으시면 해당 채널에 댓글 남겨주세요. 신속하지는 않지만 모두 답변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아니면 이 글에 직접 댓글 남겨주세요.

브런치: https://brunch.co.kr/@airtight
Q/A채널: https://brunch.co.kr/magazine/mulabosal

여러분의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과 커리어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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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개

2025.02.16

좋은글이나 결론은 광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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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6

도메인 전문성은 주니어급 박사라면 학계를 노려도 중요하다 생각되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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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6

오앙 ㅎㅎ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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