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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뒷담화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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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6

자정이 지나면 그들만의 품평회가 열린다.

"이 자료에서 이 수식은 중력 항이 고려되어야 하고…"
"수식의 전개가 아예 틀렸는데?"
"데이터의 대표성이 없는데 무슨 논문을 쓰냐"
"이런 연구도 SCIE 급 저널에 게재되다니, 역시 국내 저널은 쓰레기다"

연구실 공용 클라우드에 다른 학생들이 올린 자료들은 그들에 의해 신랄하게 까인다.

물론 교수님과의 자료 공유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협업을 위해, 혹은 데이터 백업을 위해 올린 자료지 그들과는 상관 없는 연구와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들이다.

그러함에도 오지랖이 태평양인 그들은 다른 학생들이 다 퇴근한 자정 이후, 그들의 자료를 함께 열어보고 신나게 품평회를 연다.

특정된 인물은 없다. 그들을 제외한,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의 자료만 제물이 될 뿐…

품평회에서는 다른 학생들의 연구 자료들만 까이는 것이 아니다.

외모, 행동, 업무, 종교, 과거부터 사사로운 언행까지, 아마 발톱 모양을 보고 마음에 안들었다면 발톱 모양까지 까였을 것이다.

까는 내용들에는 객관적인 근거는 필요하지 않다. 단지 그들의 불편한 감정을 공감해 줄 서로를 필요로 할 뿐이다.

그렇게 품평회에서 토론된 내용들은 당연히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토론 과정을 통해 그들의 지식의 우월성을 뽐내고, 그들만의 결속감을 돈독히 하였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새벽 3시. 품평회가 끝난다.

이상하다. 분명히 내 지식이 다른 학생들보다 우월한 것을 확인했고, 내가 그 학생을 싫어한다는 것을 다른 친구와 공감하였는데, 이상하리만치 자괴감이 든다.

그런 열등한 학생들과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는 나는 뭐지?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안 알아주지? 내일 내가 싫어하는 그 학생을 봐야하는데, ㅈ같네?

그렇게 자괴감과 결속감이 공존하는 묘한 감정과 함께 그들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한다.

그리고 몇주 후… 그 간 쌓인 자료들에 대한 의견,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만, 감정들을 토로하기 위한 그들만의 품평회가 다시 열린다.


위 내용은 SKP 공과대학 연구실에서 작성자 본인이 직접 겪은, 그리고 겪고 있는 일이다.

다른 학생들이 그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업무가 겹치지도 않는데, 단지 그 학생이 본인들의 실력에 비해 논문을 많이 쓰고, 빨리 졸업한다는 이유로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

논문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고, 졸업 연구의 결과물이 그들의 욕심 만큼 나오지 않는 욕구 불만 때문일까? 아니면 실적이 뒷담화 대상자들에 비해 적다는 열등감 때문일까?

물론 그들이 잘 한다는 것은 교수님도 다른 학생들도 인정을 한다. 모두 열심히 하고 연구실 내에서 실적으로는 상위권인 학생들이다.

근데 그렇다 한들 다른 학생들을 까내리면 "같은 연구실 소속"의 학생 평판이 떨어지는 건데, 면전에서 연구 피드백을 줄 것도 아닌게 무슨 소용일까?

본인도 연구실에서 밤 늦게까지 남을 일이 몇번 있어 저 대화를 직접 들은 적이 있어 잘 안다. 정말 남는 것이라고는 뒷담화 멤버들 간의 결속감일 뿐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나마 연구 자료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비판적인 사고 능력은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구실에 처음 들어오고 나서는 본인도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연구 방면에서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3년차, 4년차가 되면서 도저히 그들을 가깝게 둘 수가 없었다. 가까워질수록 인간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고, 남의 욕을 서슴없이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에 그들과 점점 멀어졌고, 지금은 아예 남처럼 지낸다.

아마 요즘에는 그들의 뒷담화 대상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연구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석사 친구들 (5 ~ 7명)과 박사과정생들인 그들 (3명), 그리고 그들 (3 ~ 4명)에게 질려버려 연구실에 잘 나오지 않는 박사과정생들, 이렇게 3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재 연구실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자율출퇴근 중이다.)

이러한 상황을 교수님께 말씀드려야할지 잘 모르겠다. 교수님께서 그들의 열등감을 어떻게 채워줄 수도 없고, 인간적인 태도를 고치라고 한들 나이 30 다 된 아저씨들이 부모님도 아닌 사람의 말을 들을 리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 비즈니스적인 관계만 유지한 채로 지내는데, 지금 상태가 본 연구실 소속 사람들 사이에서 최적화된 관계가 된게 아닌가 싶고, 현 상황에서 다른 외부 요인이 침투하면 오히려 혼란해질까 우려스럽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교수님을 적으로 연구실 동료들끼리 똘똘 뭉치는 관계가 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교수님은 착하신 분이였고, 아쉽게도 우리 연구실은 그렇게 되지 못 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연구란 것이 운도 따라야 하고 늘 잘 될 리가 없는 것인데, 그들도 본인들의 연구가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줄, 다른 학생들은 논문이 상대적으로 쉽게 나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니. 그들 연구가 잘 풀렸어도 뒷담화는 하고 다녔으려나..?

이제 우리 연구실에서는 더 이상 내 속마음을 터놓기 힘들게 된 것 같다. 석사 친구들은 그들과 엮이지 않게 잘 지내길 바랄 뿐이고, 잘 나오지 않는 다른 박사과정생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엮이기 싫어 보인다. 그나마 연구실 외 주변 지인들에게 터놓고 얘기하는데, 덕분에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생각 정리 겸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끝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실텐데 이런 상황일수록 본인 연구에 집중하여 좋은 결과물과 함께 빨리 졸업하는 것이 답이지 않겠냐는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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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2022.02.10

누적 신고가 5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석박사 과정이 직장생활 전초전이라,,, 사람 상대하는법과 직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어렴풋이라도 배우고 나오면 되고,,,랩 마다 분위기가 달라 인성좋은 원생들이 대부분인 랩도 있어 연구 분위기 좋은 곳도 있어니 내복이다 생각하시고,,, 본인 연구 성과 있어면 되요

대댓글 1개

2022.02.10

누적 신고가 5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직장에도 인성 좋은 사람들이 많은 부서도 있고, 안 만났어면 하는 사람들도 매일 한공간에서 생활을 같이 해야 되는 곳도 있는데, 업무상 엮이다 보니 꼴도 보기 싫어도 말을 섞어야 하는 경우, 업무상 언성 높여 싸우는 경우 등 참 다양한 일이 발생하는 곳이 직장인데,,이런 저런사람 겪다보면 사람 상대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서, 싸우는것 보다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서 생활 해 나가죠
명석한 맹자*

2022.02.10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는가?
를 시험하기도 합니다.

서포카중 한 랩인데, 적응력? 자생력 테스트한다고 쓸데없이 사람 괴롭히는거죠.
시간 낭비를 놀이처럼 하는거 보면, 참 할 일도 없구나 싶습니다.

IF : 5

2022.02.10

못났다들 진짜.... 졸업이 늦어지는덴 다 이유가 있음

IF : 2

2022.02.11

저 있던 랩도 좋은 교수님과 몇몇 열심히 하는 학생들, 그리고 열등감으로 뭉친 패배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그 상황을 모르시지 않았어요. 그냥 두신 거에요. 교수님이 개입하신다고 해서 열등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스터디 운영하고 연구하고 공부시켜봐야 아웃풋이 아예 나오지도 않는 사람들인데다가 속까지 꼬여서 남 욕만 하는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신 것 뿐이셨어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대학원에 오지 말라고 차별할 수는 없으니까요. 열등감이 자격지심이 되고 본인의 무능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객관화 능력마저 떨어지는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신다면 그냥 무시하시고 본인 일만 잘하면 되는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랩 운영을 잘 하신다면 그런 쓰레기들이랑 협업을 하게 엮으시진 않으실 겁니다. 그 정도면 되었다 생각하시고 본인 연구하시면서 졸업에 집중하시는 게 정답이겠죠. 물론 감정적으로 동요를 안 하긴 힘드니까 가끔 이런데서 욕이나 좀 하시면서 속 풀고 가시는 정도면 좋을 것 같네요.
놀란 카를 가우스*

2022.02.24

문제는 교수가 랩운영을 못할때임 꼭 열등감 쩔어있는애를 편애하고 걔가 일부러 티칭안해주고 냅두는것도 모르고 나머지 학생들 한테 화냄 그애는 연구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칭찬받고 ㅋㅋ 실제로는 연구실에서 남 뒷담까고 본인연구 열심히 안하고 그냥 시킨 일만 하는앤데.. 이래서 교수 지도력과 사람보는 안목이 중요함 뭐 그 교수에 그 학생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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