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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1차 시험 합격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세심한 버지니아 울프

IF : 3

2023.09.25

6

2921

답변이 길어져 부득이하게 하나의 게시글을 사적으로 이용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래는 원 질문입니다.
==============
내년에 같은 랩 spk 박사로 입학합니다. 전문연이 된다면 5년 더 다녀요
친구 따라 가볍게 시작해봤는데 해볼수록 오기가 생겨서 시간 짬내며 석사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학원이나 인강 없이 책으로 2년 반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이번 1차 시험에서 80점 초반대로 합격했습니다
자연과학 과목이 평균 점수를 많이 올려주었고, 2차 시험은 암기사항이 훨씬 많은 데다가 표본 수준도 높으니 독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현 연구생활도 만족스러우나, 나름 높은 한 계단을 올라섰으니 욕심이 더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연구 생활을 무탈하게 끝내면서와 동시에 5년 내에 변리사를 합격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2차 시험은 부모님께서 2년 분의 학원비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약속 받았습니다.
연구실은 자유출퇴근제입니다. 바쁜 시즌 제외하면 평일날 밤새서 최대 5~6시간, 주말에는 하루종일 공부 시간이 확보 가능합니다.
1) 박사 졸업 후 변리사가 되신 분이나,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변리사에 합격하신 분의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1차 독학 합격 정도의 실력만으로는 박사 + 학원다니며 2차시험공부 무모해 보이나요? 저와 같은 케이스로 붙은 경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2) 1차 시험은 법률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를 완벽히 이해 + 맥락을 까먹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암기하면 붙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2차 시험은 고득점 요소가 ""암기""밖에 없나요? 천자문 외우듯이 텍스트를 통암기하는 게 2차 시험의 전부라면 포기할 의향이 있습니다.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작성해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나요?
3) 박사 타이틀과 변리사 자격증을 동시에 가지는 게 큰 메리트가 존재할까요? 학벌 요소는 변리사에게 큰 작용을 주지 않을 걸로 알고 있어서요
변리사에 대한 아무런 정보, 사전 지식 없이 수험책만 쳐다본 사람이어서 질문이 이상할 수 있다는 점 죄송합니다. 바보같은 사람 구제해준다는 느낌으로 답변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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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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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래에 업계에서 뵐 수도 있는 분을 이런 곳에서 만나 반갑네요. 주변에 좀 정보가 없으신 것 같아 최대한 자세히 설명 드려보겠습니다.

1-1) 박사 졸업 후 변리사가 되신 분이나,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변리사에 합격하신 분의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변리사 중에 박사 소지자가 없는 건 아닌데 i) 박사 학위 취득 후 특허청 심사관 특채로 심사관 일 하시다가 변리사 자격증 따서 나오신 분이나 변리사 합격 후 취득한 법학 박사가 대부분입니다. 아주 가끔 연구가 적성에 너무 안맞아서 박사 학위 마치고 변리사 공부 하신 분이 있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1-2) 1차 독학 합격 정도의 실력만으로는 박사 + 학원다니며 2차시험공부 무모해 보이나요?
사실 2년 반이라는 시간을 고려하고, 자연과학 과목이 평균 점수를 많이 올려주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법 공부 속도가 좀 늦은 편이신 것 같습니다. 1차 합격은 사실 자연과학이 좌지우지하는 편이라 자연과학만 받쳐주면 군 생활과 병행해도 SPK 정도면 반년에서 1년 정도만에 합격하신 분들도 꽤 됩니다.
독학이라는게 인강조차 듣지 않은 거라면, 일단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어보긴 해야겠지만, 상당히 학구적인 타입이신 것 같은데, 이것이 변리사 일을 할때 상당한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 요구하는 변리사의 능력은 "빠른 시간 안에" 실수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지, 기술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서요. 아주 길게 잡아도 특허 명세서 하나에 기술 이해부터 발명자 면담, 명세서 작성까지 5일 안에는 끝내야 합니다.
그치만 이건 제 의견이니까 가장 좋은건 2차시험 상표, 특허 기출문제를 구하고, 한빛 변리사학원에서 2차시험 답안지를 구매해서 한 번 "시간 내에" "답안지를 꽉 채울 수 있는지" 풀어 보면 감이 오실 겁니다. 상표, 특허 2차 시험은 1차 시험보다 훨씬 적은 수의 조문들을 다루니까 내용은 이미 다 아는 겁니다. 문제는 시간 내에 답안지를 꽉 채울 수 있는가로 귀결됩니다.

1-3) 저와 같은 케이스로 붙은 경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박사 병행하면서 2차 공부해서 붙었다는 이야기는 못들어 봤습니다.

2) 1차 시험은 법률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를 완벽히 이해 + 맥락을 까먹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암기하면 붙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2차 시험은 고득점 요소가 ""암기""밖에 없나요? 천자문 외우듯이 텍스트를 통암기하는 게 2차 시험의 전부라면 포기할 의향이 있습니다.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작성해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나요?
2차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 (문제당 몇 분) 안에 답안의 목차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머리를 안써도 손이 그 목차 내용을 알아서 채워 줄 수 있도록 쓰고 또 쓰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특허 1회분, 상표 1회분만 풀어도 손이 아프고 체력 소모가 큽니다. 기억을 떠올리려는 의지 없이도 손이 그냥 알아서 쉼 없이 움직이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텍스트 통암기는 아니지만 어떤 사례에대한 판례를 키워드 서너개 정도를 순서까지 외워야 합니다.

3) 박사 타이틀과 변리사 자격증을 동시에 가지는 게 큰 메리트가 존재할까요? 학벌 요소는 변리사에게 큰 작용을 주지 않을 걸로 알고 있어서요
변리사의 길 별로 설명드려보겠습니다. 변리사의 길은 크게 i) 중소 특허사무소 ii) 아웃고잉 사무소 iii) 인커밍 사무소 iv) 로펌 v) 사내 변리사 vi) 공공기관 혹은 산학협력단, vii) 은행, 신용평가사 viii) 벤처케피탈, ix) 개업 정도가 있습니다.

i) 중소 특허사무소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의 고객들을 만나 특허 명세서를 쓰고 특허 거절이유에 대응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점: 개업에 필요한 잡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단점: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명세서 작성이라던가, 해외 출원 절차에 대한 교육이 없습니다. 꼰대 대표를 만나 인간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SPK 정도면 여기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박사까지 있으면 시작을 여기서 할 필요는 없고, SPK 박사 수습 변리사 초봉을 챙겨줄 수 있는 중소 사무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ii) 아웃고잉
주로 대기업 고객들을 만나 특허 명세서를 쓰고 특허 거절이유에 대응하고, 해외 출원 및 대응까지 합니다.
대표적인 아웃고잉 사무소가 삼성전자를 대리하는 리앤목입니다.
장점: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특히나 개업을 하게 되면 스스로 중소 특허 사무소를 차리게 되는 것이고, 그 때 필요한 명세서 작성 기술을 잘 연마할 수 있습니다.
단점: 어느 정도 배울 걸 다 배우고 나면, 반복적인 업무로 무료해지고, 대기업에 의해 명세서 쓰는 기계처럼 부림당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그 기술 분야에 대기업이 있으면, 그 대기업을 대리하는 아웃고잉 사무소로 가시면, 초봉을 좀 더 쳐줄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해서 명세서를 빨리 쓸 수 없습니다. 명세서를 더 빨리 쓸 수 없으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없습니다. 어차피 매출의 정해진 비율만큼을 자기의 연봉으로 가져가는 업계의 오랜 관행상 결국 자신의 명세서 작성 속도에 따른 연봉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iii) 인커밍
주로 해외 대기업(애플, 화웨이 등)의 자국 출원을 기초로 국내 출원을 하고, 국내 심사 대응을 해줍니다.
대표적인 인커밍 사무소가 코리아나입니다.
장점: 아웃고잉보다 연봉을 좀 더 쳐주고 워라밸이 좋습니다.
단점: 처음부터 인커밍 사무소로 가면 명세서 쓰는 법을 배울 수 없어 중소 특허 사무소나 아웃고잉으로 이직이 어렵고 개업도 어렵습니다. 외국인이 쓴 거지같은 명세서 때문에 심사 대응이 어려워질 때 좀 답답합니다. 업무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연차가 좀 차면 치사한 방식으로 퇴사를 종용당할 수 있습니다.
인커밍은 사실 남이 쓴 명세서를 이해할 정도의 기술 이해도만 필요하고, 심사 대응도 주로는 해외 심사 대응과 유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사급 인력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iv) 로펌
이름빨로 다양한 고객 층이 있지만 주요 업무는 변호사들의 소송 업무를 서포트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김앤장, 광장 등이 있습니다.
장점: 아마 연봉이 가장 셀겁니다.
단점: 로펌의 메인이 아닙니다. 변리사의 가장 큰 장점인 독립적인 업무가 불가능합니다.
로펌에서는 뽀대로 고객에게 말도 안되는 높은 가격을 받기 때문에 뽀대가 중요한만큼 박사 학위를 쳐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앤장에 이공계 박사 받으시고 변리사 일 하시는 분이 있다고 들었었습니다.

v) 사내변리사
대기업에 소속되어 아웃고잉 특허사무소에게 일을 시키고 평가하고, 특허 출원 전략 세우는 일을 합니다.
장점: 업무 강도가 중소 사무소나 아웃고잉 사무소보다 낮고, 대기업의 복지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단점: 그냥 자격증 수당 받는 회사원일 뿐입니다.
본인의 전공과 맞는 대기업에 취직한다면 박사 학위 덕분에 승진에 유리할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특허 부서는 돈을 벌어오는 부서가 아니라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박사 수당은 줄 것 같습니다.

vi) 공공기관 혹은 산학협력단
사내변리사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고용 주체가 대기업이 아니라 공공기관 혹은 학교입니다.
장점: 근무 강도가 낮아 워킹맘들이 선호합니다.
단점: 계약직이고 연봉이 낮습니다.
기술에 대해서는 제너럴리스트로서 일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연봉이 낮기 때문에 박사를 못뽑을 것 같습니다.

vii) 은행, 신용평가사
기술 신용평가 등의 업무를 합니다.
장점: 근무 강도가 낮습니다.
단점: 계약직입니다.
딱히 박사라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습니다.

viii) 벤처케피탈
제가 이쪽은 정보가 부족합니다.
성과급이 중요해서 결국 투가 원금 대비 돈을 많이 회수할 수 있는 기업을 잘 고르는 안목이 중요한데,
기술 이해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시장에 대한 시야, 비지니스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아 큰 도움은 안될 것 같습니다.

ix) 개업
모든 전문직의 끝은 개업입니다.
고용으로는 나이에 한계가 있습니다.
개업하면 중소 특허사무소에서 시작하고 주 고객층이 스타트업, 중소기업입니다.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은 글쓴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처참합니다.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낮은 수준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박사학위까지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지니스 마인드, 영업력입니다.

결론적으로, 박사학위가 변리사에게 큰 도움은 안됩니다.
변리사를 할지, 연구를 할지 정하셔야 할 타이밍이신 것 같습니다.

아래는 선택에 도움이 될만한 팁입니다.
i) 키프리스에 가서 대리인 리앤목으로 두고 본인 기술 분야 명세서를 하나 읽어보시고, 자신의 연구에 대해 특허 명세서를 한 번 작성해 보세요. 가장 돈이 안되고 가장 힘들지만 변리사의 가장 본연의 업무는 특허 명세서 작성입니다. 한번 작성해 보시고 나의 적성에 맞는지고민해 보세요.
ii) 변리사의 가장 큰 장점은 독립적으로 일하는 점입니다. 선배 변리사님들도 명세서 검수해주실 때 자신의 의견을 말해줄 뿐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오롯이 작성자 본인의 책임하에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iii) 변리사 자격증이 있으면 잠깐 방황해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iv) 변리사 일은 관습적이고 반복적입니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하다 못해 도면 부재 번호 메기는 법도 무슨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관행을 어기면 지적 받을 수 있습니다.
v) 변리사 일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빠르게 실수없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vi) 개업을 하거나 중소 사무소 쪽으로 가면 양심을 버려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고 특허 제도의 목적을 형해화 시키는 일을 도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현업에서 뵐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앞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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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2023.09.25

정성글!

2023.09.25

누적 신고가 2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굳이 병행할 이유가 없음. Why? 걍 박사부터 따고 집중해서 따는게 시간도 덜 들듯

대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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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6

어제 게시물 남겼던 사람입니다.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1-2) 독학으로 시작한 이유는, 처음 시작할 때 변리사 합격에 진심이 아니라 그냥 법 공부가 재미있어서였습니다. 단순히 남는 시간에 제테크 공부하듯이, 굳이 변리사 되는 게 아니어도 민법 내용을 알아두면 교양지식 쌓듯이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자세로 임해서 월 몇십 단위의 지출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시험 접수할 때 되어서야 덜컥 진심이 된 케이스입니다ㅠㅠ

적어주신 본문과 다른 분들의 댓글들을 읽어보니, 박사를 원한다면 시도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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