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현직에 있으면서 이직 목적이 아닌 교수 구직 체험을 유튜브로 공유하겠다고 글을 썼었는데요, 귀찮아서 유튜브는 시작하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가 되기 이전과 테뉴어 받기 이전의 임용 준비와는 많이 다른 경험을 해서 짧게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이직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온사이트 초청에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온사이트 인터뷰 기회를 준 학교들과는 분야도 잘 맞았고 아마 갔으면 오퍼를 받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서 오퍼를 받아 온다고 해도 카운터 오퍼를 할 만큼 상대 학교들의 연봉이 높지도 않았고, 혹시라도 나중에 상대 학교로 진짜 이직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며, 누군가 그 자리가 절실한 사람의 기회를 뺏는 것 같아 응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있는 학교가 티칭 학교이기 때문에 연구 학교의 티칭 트랙과 같은 주의 자매 학교(R2 혹은 M1)의 테뉴어 트랙으로 지원했습니다. 자매 학교라 하더라도 학교들마다 규모도 다르고 학교 위치의 도시 규모도 다릅니다.
연구 학교는 탑스쿨 한 곳, 30위권 한 곳, 그리고 60위권 한 곳 이렇게 세 군데를 지원해서 세 학교 모두와 줌 인터뷰를 진행했고 30위권 학교에서 온사이트 초청을 받았습니다. 같은 주의 자매 학교는 네 군데를 지원했는데 그 중 두 곳과 줌 인터뷰를 하고 두 곳 모두 온사이트 초청을 받았습니다.
간략하게 이번 구직 활동 중 느꼈던 몇 가지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직장은 역시 중요하다 많이들 첫 임용 학교가 연구 학교냐 티칭 학교냐에 따라 그 후 커리어가 정해진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예전에는 티칭 학교에 가면 티칭하느라 연구 실적을 못 내서 연구 학교로 못 돌아가는구나 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위권 대학 박사들이 작은 티칭 학교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 많이 듣는 질문이 "우리 학교는 니가 공부했던 학교와는 다르다. 당신이 우리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겠나?"입니다. 많은 신임 교수들이 자기가 공부했던 학교보다 학생들 수준이 낮은 학교에 임용되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본인들의 눈높이와 학생들의 눈높이 차이입니다. 예전에는 이것은 높은 학교에서 낮은 학교로 갈 때만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탑스쿨 인터뷰 때도 물어보더군요. 나도 커미티 멤버들과 비슷한 수준의 학교에서 박사를 받았고 큰 연구 대학을 경험 못 해 본 것이 아닌데...
2. 커미티 멤버와 싸우지 말자 위의 질문을 받고 약간 발끈해서 "내 학생이 이번에 너네 학과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학부에서 탑스쿨 박사로 바로 들어가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우리 학생들 그렇게 무시하지 말아라. 그리고 나도 큰 연구 대학에서 박사 받았고 TA로 강의도 했고 강사로 강의도 했다. 왜 내가 연구 대학의 수준을 모를 거라 생각하냐."고 좀 따졌는데 역시 온사이트 초청은 오지 않았습니다.
커미티 멤버랑 예전에도 한 번 다툼? 좀 가시 있는 질문을 온사이트 가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박사 과정 때라 인터뷰 태도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하도 짜증나는 질문을 하길래 "그러면 당신은 그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묻고 분위기가 싸해진 적이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러면 별로 결과가 좋지 않기 마련이죠.
3. 학교와 지원자 간의 케미라는 게 있다. 많은 교수님들이 특정 학교 임용에 떨어진 자신의 제자나 대학원에 있는 학생들에게 "너의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 그 학교가 너랑 맞지 않는 거다"라고 위로의 말을 합니다. 저 또한 대학원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실력이 좋으면 케미가 맞지 않는 학교도 갈 수 있다"라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60위권 대학이랑 인터뷰를 하면서 "진짜 이 학교는 나랑 안 맞는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쪽의 질문도 맘에 안 들고 정말 다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탑스쿨, 30위권 학교와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한 인터뷰라 인터뷰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상태인데도 진짜 이야기가 안 풀린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때서야 교수님들이 말하는 케미, 나랑 맞지 않는 학교라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4. 교수로서 일단 발을 들이면... 김박사넷에서도 많이 나오는 얘기인데 작은 학교 교수로 가서 큰 학교 교수로 가는 것이 낫냐 아니면 포닥으로 있으면서 연구를 더 뽑아내는 것이 낫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 연구 학교에 한국인 교수님이 계신데 이 교수님은 제가 지원했던 자매 학교에서 교수로 2년 계시다 연구 학교로 옮기신 케이스고, 제 주변에도 저 포함하여 포닥 하다 현재 학교로 임용된 교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어느 한 길이 연구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더 나은 길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수가 되어 보니 포닥을 할 때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교수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이죠. 전 임용 첫 해에 이걸 느끼고 "아, 이제 다시 교수 지원하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쉽겠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실적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죠. 교수 이전에는 "나는 이런 티칭 철학을 가지고 있고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하겠다"는 말이 정말 뜬구름 같은 이야기인데 교수 1년만 해도 감이 오기 마련입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길러지는 거죠. 짬바,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5. 교수 되기 어렵다 vs 뽑을 교수가 없다 이거는 항상 나오는 말이지만 교수 뽑기 너무 힘듭니다. 이건 연구 학교, 티칭 학교 모든 학교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저희 학과도 교수 뽑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지원자는 많아도 마음에 드는 사람은 드물고 마음에 들면 다른 학교들도 마음에 들어서 서로 채가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이번에는 오퍼 레터에 사인도 했는데 다른 학교로 가버렸습니다. 예전 포닥 할 때 오퍼 레터에 사인하고도 오지 않는 경우를 듣기는 했지만 저희 학과에서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네요.
한국 임용 시장은 언제나 항상 빡세지만 미국은 한국에 비해 정말 쉽다고 생각합니다. 테뉴어 짤려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고요. 특히 지금은 모든 학교가 (공대 학과 위주로 보면) 더 많은 교수들을 뽑으려 해서 시장이 제가 임용됐던 10년 전보다는 훨씬 커졌습니다. 그러니 꼭 교수가 되고 싶으시다면 미국 교수 찍먹 하고 한국 들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하네요.
학기말이라 학생들 성적 내다 딴짓하고 싶어 써 봤습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편 후기 https://phdkim.net/board/free/5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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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개
2024.05.22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top5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인데요, 임용 시 무조건 R1이 다른 티칭스쿨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편인가요? 연구 뿐 아니라 하나의 삶과 직업으로서 교수직을 생각하다보면 티칭스쿨에서 교수를 하는 것도 괜찮아보이는데 주변에 사례가 많지 않다보니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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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R1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던 연구를 이어서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과 그런 환경을 뒷받침 해주는 낮은 코스 로드 그리고 연봉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티칭 스쿨은 코스 로드가 많고 연봉이 3만불 가량 적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생활해 보니 여름과 겨울에 온전히 방학을 즐기는 것 보다 계절 학기를 가르치면 연구 대학 교수보다 연 수입은 많아집니다. 그리고 판데민 이후로 온라인 수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코스 로드에 대한 부담도 덜해졌죠.
본인 능력에 따라 재정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곳이 티칭 스쿨이 아닐까 합니다.
2024.05.22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한국 교수에서 미국 교수 이직은 어떨지 개인적 견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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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 1
2024.05.23
저희 학교에도 한국서 20년 정도 교수 하시다 오신 교수님이 계십니다. 한국 교수 잠깐 찍먹하고 오신 다른 교수님도 계시고요. 한국서 교수 하시다 미국으로 오신 분들 가끔 보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계신 대학이 안정적이고 거주하는 도시가 대도시라면 굳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소재, 혹은 지거국 같은 곳이면 아무래도 한국 교수가 낫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 미국은 나이가 되면 은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서 70 넘어도 교수를 계속 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 온다는 장점이 있겠죠. 가족이 있으시다면 그것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고요. 개개인의 선호도와 목적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명석한 아담 스미스*
2024.05.22
저도 한국에서 교수중인데 미국 티칭학교로 이직 고민이 되네요. 50 넘어서 이직 가능할까요? 영어로 티칭은 현 직장에서도 문제 없이 하고 있어서 영어는 걱정이 안 되는데 나이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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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미국은 나이로 고용에 차등을 두는 것은 불법이고 그게 놀랍게도 잘 지켜집니다. 연구 학교에 있을 때도 나이 많은 교수님들이 학교 옮겨서 오는 것도 종종 보았고 저희 학과에도 다른 학교에서 15년 정도 근무하다 조교수로 다시 들어온 60대 교수님이 계십니다. 5년만 하고 그만 둔다 하셨는데 이제 곧 10년 차에 들어가십니다.
2024.05.23
저도 국박(spk학석박)에 탑스쿨 포닥중인데, 나올때만해도 한국리턴만 생각했는데 나와보니 와이프가 미국에서 잡을 구하기도했고 저도 미국생활 마음에 들어서 올해하반기부터 R1스쿨들 거의 전부 지원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교수도움 좀 받아서 다른 탑스쿨에서 초청세미나 같은것 진행하고 있는데.. 실적은 괜찮긴한데 미국임용시장은 단순히 실적만보는게 아니라해서 교수가 밀어주는데 50위권 학교임용이 가능할지 아직 모르겠네요. 제가 들은바로는 한국임용 프로세스는 정말 빨리끝나는 반면, 미국은 10월공고나고 거의 3-4월 되서 끝나서 꽤 길거라고 하더라고요. 여튼 저또한 잘풀려서 다른 국박들에게 도움이 될수있는 글을 쓰게되면 좋겠네요. 저는 아직까지는 국내교수 임용이 훨씬 쉬운것같아요.. ㅎㅎ 국내교수는 사실 연구실 선배들과 아는 교수님들을 통해서 지원해보라는 얘기는 많이 듣고, 실적+커리어는 나쁘지않아서 경쟁력있을것같긴한데 미국은 도저히 감이 안오네요. 주변 스타트업 펀딩이나 연구환경을 봐도 미국top50과 한국은 차이가 큰것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spk나 연고대 임용이 바로 될정도의 경쟁력은 또 아닌것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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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한국에서 석사라도 하고 나오면 학부만 마치고 유학 나온 미박들에 비해 상황이 좀 나아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은 다른가 봅니다. 주변에서 한국 돌아가서 교수 된 경우 정말 많은 케이스가 한국서 석사까지 하고 온 케이스들인데 석사 때 지도교수들이 도움을 꽤 주더라고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사제지간이란게 끈끈하니까요.
연구 환경은 미국이 나을 수 있는데 교수 처우는 한국이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테뉴어만 받으면 나이 상관 없이 오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죠.
2024.05.23
맞아요. 근데 저는 연구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보니.. 한국리턴 고려해도 웬만한 학교아니면 대학원생 구하는게 많이 어렵고 그건 더 심각해질것이라 생각해요. 교수라는 직책에 대한 대우 등을 고려할때는 한국만한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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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그런 면에서는.. 미국이 좀 낫지 않나 싶습니다. 대학원생들 재정적 지원이라던가 NSF, NIH 같은 연방 정부 지원만이 아니라 주 정부 지원 연구도 꽤 많이 있는 편이라..
그리고 대학원생들 수급은 걱정할 필요는 없죠.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외국인 학생이지만..
2024.05.23
제 필드는 잡마켓이 코비드 이후로 점점 악화 일로이고 내년부터 좀 해소가 될 것 같다던데 공과대는 다르군요 ㅎㅎㅎ 저 또한 지난 잡마켓에서 면접만 10군데 넘게 보고 결론은 백수이구요 ㅠㅠ 재미난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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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저도 예전에 면접 보러 전국을 떠돌던 기억이 있네요. 건승을 기원합니다!
2024.05.23
귀중한 경험 공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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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후편 쓰고 있는데 후편도 읽어주세요!
2024.05.24
와 지난번에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 ^^
저는 현재 CS전공자로 AI 분야로 탑스쿨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가장 젊을 때 빅테크에서 재미있게 연구(일)를 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새로운 현실을 실현시키는데 힘쓴 후 40중후반에는 미국 현지 학교에서 (티칭스쿨 포함) 노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개인 오피스에서 탐구를 이어가며, 눈이 반짝이는 학생들과 즐겁게 수업도 하고 싶은 것이 제 인생 목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빅테크에서 한창이던 분들이 근처 대학에서 평화롭게 노년을 즐기는 분들이 종종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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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이 있는 교수님들은 그런 교수님들 많으셨죠.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학부생들이 학사만 가지고도 빅테크에 취업을 하면 교수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시대는 아니었던지라.. 지금은 오히려 교수를 하다가 기업체로 가신 케이스들을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MS, 애플, 혹은 구글에 있다 학교로 온 젊은 교수들은 연구 대학에서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그런데 10년 정도의 경력이 쌓이면, 딱히 사이드로 준비하지 않는 이상, 위치가 애매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교수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타임라인을 정해서 잘 준비 해 나가시면 목표를 이루실 거라 생각합니다.
2024.05.24
보스턴에서 포닥하고 있는데, 여기서 자리잡고 있는 교수님들 썰을 들어보니 참 교수로 눈앞에 있는거 같지만 막상 걸어보니 아직 한참 남았더군요. 교수님들마다 자리잡기까지 이런저런 썰도 이야기해주셔서 미래를 계획하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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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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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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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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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2024.05.23
2024.05.23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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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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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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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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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