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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들을 위한 연구 팁

IF : 2

2021.11.27

3

6793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몇 가지 짤막한 연구 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원래는 주저리주저리 길게 썼는데,
글 쓰는 능력이 모조라서 다 지우고 간략하게만 쓰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기에,
제 의견과 다른 의견을 들어보고,
제 생각의 폭을 넓히고 싶습니다.
고수 분들의 댓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ㅎㅎ;;

1. 내 연구 효율은 논문에 쓸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연구자의 소통 방식은 논문이라고 봅니다.
내가 가진 생각, 내가 한 실험의 결과는 논문으로 출간되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몇 가지 예외 - 예컨대 실험을 셋업하고 컨디셔닝을 하는 과정 -를 제외한다면
내가 이 실험을 왜 하는지 (실험의 논리),
실험을 왜 이렇게 설계 했는지 (실험 설계),
실험을 설계할 때 어떤 연구 결과들을 참고하였는지 (실험의 근거)
실험이 제대로 수행되었는지 (positive control, negative control)
실험의 결과와 그 해석은 타당한지 (결과의 타당성)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논문으로 출간이 가능할테니 말이죠.



2. 실험을 무턱대고 많이 '하지' 마라. 집중해서, '되게' 하라

과거 저는 실험을 많이 하면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근데 그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을까........
실험을 많이 '한다'고 결과가 많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1번에서 말한 퀄리티가 대부분 보장이 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는지 논리도 없고, 설계도 잘못되었고, 근거도 없고...
그래서 제가 첫 논문을 쓸 때 얻은 결과의 2/3는 논문에 싣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죽도록 열심히 해서 첫 논문의 패널이 (서플을 합쳐서) 정확히 100개였습니다.
대충 200개는 버린거죠...
5년을 넘게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쓸 수도 없이 버려진 데이터, 정확히 말하면 제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논리/설계/근거가 완벽하다고 쳐도
실험을 동시다발적으로 많이하면 집중력이 낮아졌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실험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언젠가 김빛내리 교수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과학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소량의 물질을 처리할 때가 많은데, 그게 제대로 들어갔는지 꼭 확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한 말을 찾고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나오지를 않네요;;)
솔직히 저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언가 거창한 말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기본에 충실하라는 그 말이 저에게는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열심히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저는 역설적으로 실험을 많이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지금 키우는 세포를 절반으로 줄이고, subculture를 중지하고,
지금 키우는 동물의 마릿수를 줄이고, mating을 잠시 멈춰보세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실험의 논리와 설계와 근거에 대해
그리고 그 실험을 수행하는 실제 계획에 대해

많이 하지 마시고, 집중해서 실험이 '되게' 하세요.
특히 이 글의 예상 독자인 초심자분들,
랩에서 잡일이 많으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오히려 실험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집중해서 일주일에 패널 1개만, 딱 1개만 논문용으로 얻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1년이면 50개, 2년이면 100개거든요.

방금 세봤는데 이번 논문의 패널은 143개더라구요.
신기하게도 논문 시작부터 억셉까지, 딱 2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3. Positive control, negative control 실험을 꼭 넣어라.

2번과 연계되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따로 씁니다.

논문을 평가하는 에디터와 리뷰어는 결코 제 논문에 쓰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약물을 처리했다고? 그게 작동했나?'
'쥐를 운동시켰다고? 운동의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나?'

특정한 약물이나 처치를 했다면
실험이 제대로 수행되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잘, 말이죠.

저는 냉동고에 오래 보관되어 있는 시약은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특히나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말이죠.
그래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약이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데이터를 논문에 실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약물을 처리했다면, 그 약물이 처리되었을 때 나타나는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마커를 보여주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했든, 살을 찌웠든, 암을 일으키는 물질을 투여하든,
무엇을 하더라도 대조군과 실험군에서 나와주어야 하는 것들이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peer review를 하게 되는 경우, 제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컨트롤이 없으면 그 실험 결과를 믿지 못하게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세운 논리를 믿을 수가 없더라고요.



4. 현상 관찰부터 시작하라.

저는 사수로부터 유전자가 결손된 쥐를 받았습니다.
나는 연구 끝났으니, 니 알아서 해라, 라고 말이죠.

저에게는 연구를 해야할 유전자가 있었고,
다행히도 동물 모델이 있었습니다.

그럼, 저는 뭘 하죠?
절 딱히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실 유전자와 동물 모델을 받고 시작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한데...
감사하기는 한데...... 뭐...... 좀 막막했어요.
1년 넘게 이 고민을 했는데 마땅히 답은 나오지 않더라구요.

저하고 비슷한 경우의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그냥 이렇게 할 것 같습니다.

실험실에서 하는 주제가 있을 것입니다.
알츠하이머, 유방암, 근육 발생, 운동 생리, 면역 반응 등등등
거기서 대조군 / 실험군 샘플을 제가 만들든, 선배들에게 얻든 해서
유전자의 발현량부터 살펴볼 것 같습니다.
정상 vs 질병 모델, 질병 모델의 진행 과정, 자극에 대한 반응 등,
생각해보면 결손 동물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살펴볼 수 있는 실험군 / 대조군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한 실험 조건에서 mRNA, protein, 조직학적 분석, public database 활용 등을 통해서 유전자의 발현량 또는 세포의 비율, 또는 본인이 연구하는 그 무엇을 분석해 보는 것이죠.

저 또한 최근 새롭게 시작한 연구에서,
실험실에서 가용한 샘플들을 다 활용해서 실험군과 대조군을 구성한 다음에
제가 연구하는 유전자와 특정 세포 유형의 비율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현상 관찰에서 시작한다는데,
그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연구실에 세팅된 상황에서 본인이 관찰할 수 있는걸 다 해보는거죠.
그러다보면 뭔가, 뭔가가 있는 상황이 나오게 될 겁니다. 저는 그럴 것이라 믿어요.




5. 마치며

제가 가진 팁은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더 짜내보려 했는데, 뭐.... 별게 없습니다.
저도 딱히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다만, 그저, 그냥 아는 것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써봤습니다.

제가 학부생 인턴을 하던 시절
사수 형이 읽어보라고 했던 책이
"손을 잡고 가르쳐 주는 DNA 클로닝" 이었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75995750

처음엔 그 책 제목을 보고는 웃어버렸는데,
지금은 이 말이 얼마나 정겹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손을 잡고 가르쳐드리지는 못하지만
댓글 남겨주시면 틈 나는대로, 제가 아는 한, 많이 부족하지만, 답글을 남겨보겠습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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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2021.11.28

저도 공감가는 내용이 많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네요.

2번 관련해서 1주일 패널 1개라는 말씀이 온전히 모든 실험이 끝난 패널 1개 말씀이신가요?
생명과학분야에서 특히 마우스관련 실험도 하셨던 것처럼 보이는데
1주일 패널 1개 -> 2년8개월 143개라는 말씀은 다른 공저자 없이 교신저자와만 논문을 쓰시는 경우인가요?

2021.11.29

유익한 내용 + 우수한 필력 = 닥 따봉

2024.05.02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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