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안녕하세요.
우연히 김박사넷을 알게되어 가끔 눈팅하러 왔었는데 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학부가 그리 좋지 못해서 SPK 지원이 어려웠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석박통합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를 받아주신 교수님께 대단히 감사드리고 있고 정말 좋으신 분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또한 연구실 분위기도 좋고 타대생과 자대생 사이의 차별도 없고 정말 좋은 연구실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 입학했을 때, 자대생의 학업 수준이 너무나도 벽처럼 느껴졌기에 지난 5년 동안 주말, 명절 가리지 않고 출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수님께서는 제게 많은 신뢰, 그리고 어려운 과제와 일들이 많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일이 많아도, 어려워도 제 부족한 학부를 커버할 수 있는 커리어라 생각하여 지난 5년을 밤샘하면서 설계하고 연구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년에 2자리 수를 채울 정도의 설계와 실험이 있어도 불만없이 묵묵히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로, 같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뒤돌아 봤을 때 실력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실험 장비가 비싸고, 장비 이해도가 높다는 이유로 후배들 실험을 대신 해왔고, 이런 생활이 당연하게 된 연구실에서,
하고싶은 연구가 있어도 매번 과제를 수행했어야 했고, 연구 성과가 부족한 분야에 투입되었다가 잘 굴러가면 다시 빠지게 되었고,
연구실 분위기가 좋지 못하면 연구실 분위기는 박사과정의 몫이라는 말과 함께 언제부턴가 제 주말 출근은 당연한 것이였고,
이제서야 박사과정의 연구 주제를 결정하자는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논문 성과 하나라도 있다면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텼어요.
얼마 전, 탑 저널에 게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논문이 도미너처럼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힘이 많이 빠진 거 같아요.
교수님도 왜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한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신 후 별로 대단한 연구가 아니였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교수님께 혼나는 일이 많았지만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었고, 문제가 있어도 내가 해결하면 된다고 믿어왔던 저였지만,
저는 그 날 잠시 넘어졌던 거 같아요. 그리고, 얼마 전 특정 과제에서 타학교 교수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왜 아직까지 미루고 있냐고..
잘할 수 있는 연구보다 해야될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교수님께서는 연구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연구실 분위기는 박사과정 몫이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들었어요. 그때서야 느꼈던 거 같아요. 나는 지금 무너졌다는 걸.
이제는 논문 자체를 쳐다보기도 싫고, 컴퓨터에 앉아서 유투브만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보고 있습니다ㅎㅎ
며칠 전에 오후 2시에 산책을 나갔는데, 너무 더운 날이였음에도 너무 행복했던 거 같아요. 제가 봐왔던 하늘은 항상 새벽이였는데.
열심히 할 의욕도 안나고,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보고서 작성할 때, 여러 번 읽어보면서 검토했었는데, 이 글 만큼은 날 것 그대로 두고 싶어서 안했습니다.
두서없고, 형편없는 글임에도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리며 박사과정을 마무리하신 선배님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