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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미국의 좋소 대학 교수가 되었나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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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돌아 보면 이것보다는 나을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도 여기에 오는 많은 어린 후배들처럼 박사 시절에는 뭔가 될 것 같았다.
유학생이란 이점으로 박사 과정 때 서울에 있는 대학들에 초대 받아 플젠도 하고 강연료도 받고..
아.. 나를 알아 보고 초대를 해준 것은 아니고 내가 여기저기 엄청 컨택을 했다.
이런거 하는 박사생인데 찾아 뵙고 연구에 대해 말씀 좀 나누시죠.. 이렇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런 모습이 기특해서 불러 줬던게 아닐까 한다..

그 때만 하더라도 뭔가 잘 될 것 같았는데.. 나는 왜 좋소에 있을까... 난 왜 실패 했을까.. 고민 했다.
시간이 흐르고 객관적으로 잘 생각해보니 실패의 원인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도 하고 인생은 타이밍이라고도 하고
하지만 그런거 다 빼고 제일 큰 실패의 요인은...

Procrastination, 미루는 습관이었다.

여기에 많은 훌륭한 후배 연구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연구를 열심히 했다. 이 전 글에 썼던 것처럼 박사 때 총장상도 받았고 논문 편수도 꽤 되었다. 학회에서 상도 몇개 받았다, 이건 박사 후 얘기지만. 나름 이 분야에서는 알려진 네임드였다. 학회에 가면 나를 알아보는 다른 박사생들이 꽤 있었다. 좀 특이한 연구를 해서 (나름 유명한) 다른 학교의 대학원 수업에 내 논문 몇개가 리딩 리스트에 들어가 있던 적도 있다. 그리고 박사 졸업 전에 총 citation 수는 1000이 넘었고 H-index, I-index 둘 다 왠만한 신임 조교수들 수준이었다. 이 숫자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그런데 왜 좋소에 있나? 하면.. 이 엿같은 미루는 습관 때문이다. 아마 이것은 내 정신적 문제일 수도 있고.. ADD 같은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자의식 과잉의 자만감인가.. 여튼 막바지에 몰아서 하는 경향 혹은 습관이 있는데 이걸 끝까지 고치지 못 했다. 박사 디펜스 때도 하루 전날에야 부랴부랴 슬라이드 만들고 온사이트 인터뷰 때도 인터뷰 전날 밤까지 슬라이드 수정을 했다. 그래서 항상 4-5시간 자고 면접을 봤다.

그래서 그런지 폰이나 화상 인터뷰는 잘 넘어갔는데 온사이트는 좋소들 빼고는 다 실패 했다. 탑 10 공대도 있었는데.. 여기는 면접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조금 울었다. 다시는 못 올 기회라는 것을 알아서..

만약 논문 실적이 좋은데 인터뷰 좀 못 봤다고 떨어지나 하는 의문을 갖는다면 33%의 확률이란게 그렇게 높지 않다고 말 해주고 싶다. 다른 두명의 파이널 리스트들 보다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들이 이 자리를 정말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면 더더욱. 저번 글에도 썼던 것처럼 난 교수가 되면 좋겠지만 회사도 좋고 한국도 좋고 미국도 좋고 어떻겠든 되겠지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미루는 습관까지 있었으니 잘 될리가 없었던게 당연하다.

나는 이렇게 실패 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나의 자리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절실한 자리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어떤 것을 절실히 원한다면 계획을 구체화 하고 미루지 말아라. 이것은 정말 간단한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 한다. 왜냐하면 그다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절실하고 실행력 있는 사람들만이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본인 머리가 좋고 논문 실적이 좋고 그래도 자만하지 말아라. 저번 글에 썼던 박사 기간동안 네이쳐랑 사이언스에 논문 낸 동기, 공대에서 이런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동기들중 제일 열심히 했다. 진짜 미친 놈처럼 하더라.. 심지어 이 친구는 멘사 회원이었다. 세상에는 머리 좋은데 노력도 미친듯이 하는 인간들이 참 많다. 그런 세상에서 안일한 마음으로 하다가는 내 꼬라지 되는거 당첨이다.

* 저 탑 10 공대는 결과적으로는 떨어졌지만 학과가 그 해 아무도 뽑지 않았다. 그 때 나는 포닥 한학기를 끝낸 시점이었고 다른 두 사람은 년차가 좀 있었던 여자 교수들이었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듣고 나 혼자만 떨어진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 탑 10 공대에서 좋소 대학으로 어떻게 떨어지냐 이런 질문 나올까봐 미리.. 나도 처음부터 좋소 넣은거 아님 포닥 막 시작 했지만 일단 포닥이니까 넉넉하게 30위권까지 분야 잘 맞는 곳, 5개 정도만 넣었음. 아마 인터뷰는 거진 다 한듯. 그런데 이렇게 하면서 시간은 지나가고 PI랑 마찰이 생겨 계약 끝나기 전에 나가기로 맘 먹음, 이것도 이야기가 좀 있는데 일단 생략. 이때가 이미 2월 말.. 이 때쯤이면 왠만한 학교들은 사람 다 뽑아서 오퍼 레터 보내는 시기임. 3월 지나가면 공고가 잘 나지도 않지만 좋은 학교가 없음. 이 때부터 한국 대기업, 미국 대기업, 좋소 포함 다 넣었음. 다행히도 5월말 6월초에 회사들이랑 지금 학교랑 다른 좋소들한테서 오퍼 받음.

*** 나중에 또 글을 쓸지 모르지만 좋소도 등급이 있음. 여기는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정부 지원이 잘 나옴. 동료 교수들 중에 하바드, MIT, 버클리, 스탠포드, UCLA 등등 있음. 그 사람들 이야기는 어떤지 진짜 궁금함. 이 버클리 나온 교수 박사 동기는 조올라 유명한 교수임. 같이 박사 때 독서 클럽 했다 함. 현재 위치는 넘사벽 정도를 넘어 뭐 거의 다른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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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9개

공허한 어니스트 러더퍼드*

2023.06.02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2023.06.02

Top 10 공대 교수님이 되셨으면 지금이랑 어떤 부분이 가장 크게 다르셨을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댓글 5개

2023.06.02

인터뷰를 간 것 자체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학교라서 그곳에서 테뉴어 받을 생각은 안 했어요, 면접 갔을 때도. 거기서 2-3년 경력 쌓고 한국 상위권 대학으로 도망가야지 하는 생각이었죠. 거기 교수들 학벌이 쫄리는 것은 아니었는데 연구업적들이 어마어마... 그래서 이 곳에서 몇년 버틴 경력이면 서울 상위권 대학도 충분히 노려 볼만 하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때 운이 좋게 임용이 되었으면 지금쯤 서울의 어느 학교 교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그런 멀티버스적인 생각? 그런게 아쉽죠.

2023.06.02

근데 미국 탑10 교수에서 한국 이동이면 SK 거의 프리패스 아닌가요...??

2023.06.02

그 학교에 있던 한국 교수님 삼성 vice president, 상무? 전무? 뭐 그런걸로 스카웃 되서 갔어요.

아.. SK가.. 그 SK가 아니군요..

2023.06.02

회사말고 설카요..ㅎㅎ

2023.06.02

그건 그곳 교수님들만 아시겠죠 :)

2023.06.02

교수님 전공이 무엇인지 궁금함닷.!

대댓글 1개

2023.06.02

알려줄 수 없어요!

2023.06.02

말씀하신 좋소 대학이 R1이시긴 한지요??
근무나 연구 환경이 많이 안 좋은가요? 좋소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댓글 4개

2023.06.02

아니요. 이전 글에서 쓴 좋소 정의를 붙여 넣기 했습니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좋소란..
재학생 만명 수준의 박사 과정이 없는 R1, R2가 아닌 M1 학교를 말함.
여기서 박사 과정은 Ph.D.를 말함.
간혹 박사 과정이 없는 학교지만 리서치를 많이 해서 R2인 학교들도 있음.

2023.06.02

아 좋소는...
좋좋소라는 웹드라마를 패러디 한겁니다.
중소기업 이야기인데.. 자세한 것은 나무위키를...

2023.06.02

그렇군요! teaching school인 것 같은데,
미국 teaching school 교수자리도 동경하는 사람들 많죠!!
힘내시고,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02.14

저도 좋소입니다 ㅎㅎ 테뉴어 축하드립니다. 저도 빨리 안식년 좀... 부들부들

2023.06.02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도 5번 최종에서 미끄러졌었는데 인터뷰도 하면 할수록 매학기 스킬이 늘더군요. 간절히 원하는 자리가 있으시다면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댓글 1개

2023.06.02

이미 테뉴어 받고 안식년까지 보냈습니다.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ㅎㅎ

2023.06.02

누적 신고가 2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하니까 딱 그 모냥인거 같네여. 결론이 뭐요

대댓글 1개

2023.06.02

저기 결론처럼 잘 해서 내 꼴나지 말라는건데..
글을 보니 그쪽은 내 꼴 나면 성공한거겠네요.

2023.06.02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마음에 안드시는지?? 괜찮은 삶 아닌가요? 다 나름 스타일과 과정이 있는거죠..

대댓글 1개

2023.06.02

맞습니다.
정 붙이고 살면 다 괜찮은 삶이지요.
세상에 마음에 쏙 드는 직장이 어디 있나요..

2023.06.03

저도 자꾸 이것저것 미루게 되는데... 디펜스 프레젠테이션 전날 마무리 하다가 컴터 뻑나서 식겁햇던 기억나네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머리가 좋아서? 미루게 되는게 아닌지? 연결해보기도 하네요. 가끔씩 몰두할때는 밤낮없이 파고들고.. 좀 이해햇다 싶으면 흥미가 확떨어져서 내일하지뭐.. 이렇게 되버리네요 하

대댓글 3개

2023.06.03

뭐 미루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한 정신과 의사가 말하기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루게 된다고 하더군요.
완벽주의자라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못 해 내거나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요.
예를 들어, 월급 올려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는거 이것은 그 대상자, 보스의 응답이 거절일 것이
두려워서, 즉 자신의 요청이 실패 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루는 것이라 하더군요.

2023.06.03

공감합니다. 저도 실험구상할때 가능한 여러가지 측면을 미리 고려해서 구상하는데.. 완벽하게 통제하려고하면 일이 시작이 아예 안되더라구요.
또 어떤 측면으로는 약간 현실도피나 자기파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진짜 미루다 미뤄서 맨마지막 데드라인 직전에 몰아서 하면서 어떻게든 넘기고 넘기면서 살아오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여기까지왔지 싶네요 ㅋㅋ

2024.10.13

저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계속 미루는 경향이 강합니다ㅠㅠ. 이런 제 모습을 고치고 싶은데 혹시 조언 부탁드려도 괜찮으신가요? 지금은 석사 졸업했고 미국 유학가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

2023.06.07

전 국내에서 박사하고 한국 수도권 사립대에서 조교수 하고 있는데...
여긴 10년 뒤면 수도권도 학생 부족이어서 대학 본부부터 늘 긴장상태입니다...
미국 대학 이야기 넘 부럽네요...

대댓글 1개

2024.02.14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뭐 다국적으로 세일즈가 가능해서 나은 편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중국학생이 적어져서 비상이 걸렸는데 어찌 어찌 인도학생으로 버티더니 지금은 아프리카랑 사우디에서 많이 옵니다. 신기해요...괜히 학장이나 총장 연봉이 수십억 가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2023.06.07

부정적인 의견들이 몇 있지만, 아직 박사과정 중인 학생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조언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잘 되는 선배, 동료들을 보면 '좋은 머리 + 간절함 (노력) + 운' 이 삼박자 맞는 사람이 많이있었습니다. 머리나 운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것이니, 결국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한 제 자신을 반성하며,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2023.10.27

글을 쭉 읽다보니 ...

감정 하나가 툭 읽힙니다.

진짜 고생하고 열심히 사셨구나.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열심히 사셨구나.

존경합니다.

남들은 모를시간에 고민과 머리아픔에 회피하려는 본성과 싸우면서 치열했지만 스스로의 안타까움이 느껴지네요.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 공감합니다.

이런 좋은글 남겨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부디 더 좋은 기회가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글에서도 배울 것이 많으니 참된 스승입니다.)

2024.03.11

미루지 말기. 간단하지만 지키기 쉽지 않은 조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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