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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와 적성 직업에 대한 저의 느낌 (장문 주의)

IF : 1

202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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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88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냥 제가 최근에 했던 저의 생각과 고민들에 대해 익명의 힘을 빌려 솔직하게 적어볼까 합니다

저도 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글이 중언부언 할것 같네요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현지 직장을 잡고 직장에 적응이 되고나서부터
저는 오히려 큰 고민과 방황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중고등학생일때, 대학때, 대학원때 항상 저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학점을 잘받아야하고
학위를 받아야 하고
미국 현지에 취업해야 하는 목표들이요

그런데 취업을 하고 제 분야에 정말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그분들이 정말 자신의 일을 즐기고 덕업일치를 이루며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누구도 정확히 제 목표를 설정해 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방황이 시작됐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승진이나 연봉 더올리기 이런 목표를 삼을수도 있지만
그런 목표는 저에게 와닿지도 그렇다고 절실하지도 않더군요
더군다나 미국은 워낙에 이직도 해고도 잦다보니 조직내에서 주위에 인정 받는다는 것이
크게 의미를 가지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목표를 내가 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자가 되기
이렇게 다소 두루뭉술한 목표로 최선을 다해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힘이 빠지더라구요
지식은 무한정이고, 이세상에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고, 내가 더 많이 배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저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저는 요구되는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고
또 동시에 제가 뭘 특별히 잘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고 좋아하니
이공계를 가야겠다 라는 목표는 어릴때 부터 쭉 가지고 살았지만
그 뒤로는 그 중에서도 내가 뭘 특별히 잘하는지
사람의 능력을 세세하게 나누면 수백가지로도 나눌수 있는데
그 능력중에 내가 어떤 능력이 제일 좋으며
그 능력을 나의 분야에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더군요

정말 무식하게 그냥 열심히 하면 될꺼야
결과가 안나오면 열심히 하지 않은 내탓이야 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닥달하면서 살았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덕업일치라던가 일을 정말 좋아해서 미쳐서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요

사실 제가 하는 분야는 제 전공 안에서도
실험을 참 많이 해야하고
관찰력, hands on을 할수 있는 능력, 그리고 경험에서부터 배우는 능력
이런것들이 많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반대로 저는 항상 수학을 좋아하고 통계를 좋아하고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을 잘하고 유학을 하면서도 제 전공 안에서도
통계나 수학관련 과목은 class 1등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잘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잘하려고 애써오며 살았더라구요
그러니 공부도 일도 고되게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것에 대해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건
제가 일하는 직장의 매니저가 사람 파악을 참 잘하고
각자에게 맞는 역할과 일을 주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매니저가 저에게 부여한 일이 제 분야안에서는 그나마
엄밀한 분석력, 복잡한 것을 풀어내는 능력
많지 않더라도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들
이런 일들을 저에게 맡겼는데 일이 너무 재밌어서
금요일 밤에 퇴근을 한 뒤에도 토요일까지 내내 그냥 이 문제의 답이 뭘까 풀면서
주말을 온전히 일에 바치고
평소에도 일을 하면서 보통떄와는 다른 엄청난 집중력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니저도 너가 이일과 정말 잘맞을것 같다고 기회를 계속 주더라구요

그러면서 깨닫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해서 나는 저사람만큼의 재능이 없어 라고 좌절하는건 바보짓인 것 같습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재능의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수백가지의 능력 중에 내가 가장 잘할수 있는 것
나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것 그것을 직업으로,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먹고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뭐든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내 분야 안에서도 또다시 세부분야를 세세하게 나누고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잘할수 있는 세부분야를 정해 그것만 잘하자
그대신 이건 정말 내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자 라는 목표를 정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이 재미있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앞으로 이직을 할떄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을떄도 이러한 목표를 기준으로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다 말하고 그리고 이직을 하더라도 돈 많이 주는 곳에 이직이 아니라
내가 정말 잘할수 있는 것과 잘 맞는 직장으로 이직을 해볼 생각입니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왜 그렇게 미국사람들이
일을 맡길때 무작정 주기보다는 그 일이 내가 하고싶은 일인지 먼저 물어보고
내가 뭘 하고싶은지를 왜 자꾸 주구장창 물어보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저는 원래 시키면. 돈 많이 주면 다 한다고 할텐데 왜 자꾸 물어보나 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운동선수도 다 같은 운동선수가 아니라 축구, 야구, 농구 다 다르고
축구 선수 안에서도 측면공격수, 중앙수비수, 왼쪽미드필더 등등 다양한 포지션이 있는데
저는 내가 어떤 재능이 있어서 어떤 포지션을 정해야 할지 모르고
다 잘해내려고 누군가가 지정해준 포지션에서 애쓰면서 살아오다가
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나는 어느 포지션이 어울리고 잘해
다른 포지션은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누가 하라고 해도 싫다고 하자 라고 답을 정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이해를 왜 진작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몇번의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부때 보다 나에게 맞는 전공을 찾아볼수 있었고
석사때 박사는 나와 좀더 맞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방향을 틀수도 있었고
그리고 박사를 하면서도 박사 초년차에 지도교수를 바꿔서
나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연구주제를 택할수 있었는데
이 모든 기회를 놓치고 내가 즐길수 없는 공부와 일을 끌고 왔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대학떄는 그리고 대학원때는 다른 고민들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가령 유학을 간다면 어느 정도 랭킹에 갈수 있을까
박사를 받을수 있을까
박사받고 나면 어디 취업을 할까 등등
이런 고민들이 정말 내가 해야할 고민들을 잡아먹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를 한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서
나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이것이 어떻게 직업으로 연결될지에 대한 고민을 했더라면
제가 학위를 하는 과정도 더 즐겁고
그리고 지금의 저보다도 훨씬 더 나은 레벨의 엔지니어나 싸이언티스트로 일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아쉬운 점을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저의 솔직한 고민과 나름 찾아낸 답을 익명을 통해 풀어봅니다

물론 저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간판이나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실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정착을 목표로 하시는 분들은
내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할수 있는 그런 직업을 택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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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2개

조용한 정약용*

2023.08.05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3.08.05

깊은 경험을 상세하게 풀어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8.05

이렇게 사람 잘 만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저도 미국에서 박사학위뒤 리서치 엔지니어로 일하는 중인데, 좋은 문화를 가진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다보니 단 하루도 출근이 싫었던 적이 없습니다. 프로젝트들을 직접 설계하고, 랩에서 실험하며, 각종 마켓에서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어플리케이션들을 발굴하다보니 일이 너무 의미있고 재미있습니다.

저는 학위시절 연구뿐만 아니라 랩밖에서 다양한 경험들도 하며 제 능력과 철학들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하며 살았는데, 현재의 제 커리어 랜드스케이프와 만족도는 좀 운이 많이 따른 것 같습니다. 물론 고민을 해서 좀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도 부정은 안하지만요.

여하튼 행복하시다니 저도 기쁩니다!

대댓글 1개

IF : 1

2023.08.05

좋은 곳에서 좋은 분들과 일하시다니 축하드립니다
저도 제가 좋은 매니저를 만나서 저에게 어울리는 세부분야를 찾고 일을 즐길수 있게 된게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2023.08.05

좋은글 고맙습니다
아직 학부생인데 닥치지도 않은 석사,박사,졸업후고민이 더크다보니 글쓴이님 글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좀더 근본적으로 내가좋아하는게 뭔지 내가싫어하는게 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싶은데 고민을 무엇부터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대댓글 2개

IF : 1

2023.08.06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를텐데요
저의 경우 유학을 가서 미국에 살고 싶은건 확정적이었고 그 중에 뭘 어떤 분야를 해야 정말 잘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학점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싶은 일을 찾기위해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할것 같아요
하다보면 내가 재밌게 느끼는 과목 또는 더 좁게는 챕터가 있을 수 있고
내가 어떤 과목, 어떤 분야, 그 중에서도 어떤 부분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지 볼것 같습니다
저는 실험에 익숙하지 않고 hands on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전공 과목중에 통계나 확률 등이 쓰이는 과목들이 좋았어요
하지만 순수 과학의 학자보다는 응용분야로 미국에서 취업하고 싶었구요
이런점을 기초로 학부때 아예 산업공학이나 응용통계로 학과이동을 해보거나 그게 아니라면 석사때 관련 학과로 진학을 하거나
아니면 박사 논문 분야와 주제를 그런 방향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길게 썼지만 저의 생각은 이미 대학원진학이나 유학으로 결심이 굳어지셨다면 치열하게 공부해서
긴 공부 그리고 더 긴 직업에서 내가 정말 어떤 과목, 그 중에서도 뭘 잘하고 좋아하며 이게 어떻게 직업으로 연결될지 생각을 해볼것 같습니다

2023.08.06

정성댓글감사합니다. 하시는 일 모두 잘되시기를 바랄게요!!😄

2023.08.07

석사 후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말씀하신것들 모두 너무 와닿아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그닥 좋은 연구자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다소 수동적이고 똑똑하지도 않고 아이디어도 없었습니다. 대신 누구보다 성실하게 배우고 디스커션하는걸 잘하는데.. 그걸 잘 배우지 못했어요.
그 상태로 취업을 하고 똑같이 일하다보니 마찬가지로 똑똑하고 자율적으로 척척 일하는 동료 연구원들에 비해 제가 너무너무 초라해졌어요.

그래서 지금, 고민의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진짜 내가 하고싶은일에 몰두하고 싶고 또 그런일을 찾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고싶어서요.
석사과정에서 그런 경험을 쌓지못한것이 정말 너무 후회스럽고 한이 되지만.. 지나간 일이기에 잊고 지금에 집중해보려합니다.

비단 제가 못나서, 바보라서 멍청한 선택을 해서가 아닌 그냥 아직 내가 잘하는일을 몰라서 헤매는 거라고 알려주시는것 같아 위로가 됩니다..
건승을 빕니다
언짢은 제인 오스틴*

2023.08.08

사실 많은 한국인들이 자기 적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적성같은건 없다고 믿는 사람도 굉장히 많죠.

한국은 성적순으로 가야할 직업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고 많은 이들이 고민없이 정해진 루트를 따릅니다. (예. 그 점수로 의대를 안가고 공대를 가는건 지능에 문제 있는거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 목표는 자기 일에서 성공하는것이 아니라, 빨리 돈 벌고 40대에 퇴직하는거죠.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고, 국가적으로도 손해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삶을

2023.10.16

"나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이것이 어떻게 직업으로 연결될지에 대한 고민"... 공감합니다 ㅠ

2023.12.01

1~2년 뒤에 졸업하는 박사과정 학생인데 작성자 분과는 반대로 저는 수학 통계 쪽을 전공하고 있고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 흥미와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했던 이 고생들을 또 해야할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서 일단은 이대로 졸업을 하려고 합니다... 작성자님의 용기와 결단을 응원합니다!!

2024.02.13

국내에서 박사학위 후 미국에서 포닥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공부를 하면서도 참 의미 없다, 재미없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작성자 님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댓글 1개

2025.06.02

파이팅입니다!

2024.02.2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쇼펜 하우어가 말하길 남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할 때 불행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로서 가치 있고,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하기에 필자 분의 노고와...가치관이 녹아든 글에 감동하고 갑니다..

IF : 1

2024.03.06

최근에 유튜브 쇼츠에서 만난 격언인데 자신이 어떤 진로를 찾아야하는지 알고싶다면 내가 어떤일의 "결과"를 좋아하는지 "과정"을 좋아하는지를 보라더군요 덕분에 항상 진로 관련해서 갈림길이 나오면 그 일을 하고 있는 제가 즐거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어요
성자님도 인사이트와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대댓글 1개

2025.02.15

과정은 쉽게 생각나는데
결과는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흠.. 과정은 토론, 활동적인 활동, 협동 스포츠, 음악감상, 과학영상 시청 이렇게 나오느데
결과는 어떤 예시가 있을까요

2024.05.11

너무 현실적이고 좋은 고민입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승하시길바랍니다.

2024.09.02

참 좋은 고민들과 생각들을 공유해주셨네요.
제가 더 젊은 나이에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늙어가는 이 시점에도 과거를 돌아보고 짧게 남은 미래라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어 감사하네요.

2024.09.12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04.10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06.13

읽으면서 너무 공감이 되어서 눈물이 나네요...

2025.08.1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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