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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저항운동적 성격 - 홍익대 경영학과 안효영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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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저항운동적 성격

목차


Ⅰ. 서론


Ⅱ.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소개

1. 방정환 아동문학

2. 이원수 아동문학

3. 송창일 아동문학


Ⅲ. 일제강점기 아동인권 실태

1. 신체적 학대

2. 정서적 학대

3. 성적 학대

4. 방임


Ⅳ.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의의

1. 현대사회의 문제점

2. 아동문학의 연대가치 재인식

3. 현대 사회 문제의 해결방안


V.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저항운동적 성격

1. 민족주의

2. 아동인권중시


Ⅵ. 결론

Ⅰ. 서론


이 글은 일제강점기의 아동문학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아동문학이 가진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적 성격을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포함한 국권을 침탈당하고, 조선왕조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중의 삶은 상류층의 삶보다 더 고달팠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지어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삶은 정부의 부재로 더 비참했을 것이다. 이 때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로 볼 수 있는 아동들의 인권을 주장하고 이들을 보호하려는 아동 인권운동가들이 있었다. 방정환, 이원수, 송창일은 아동의 인권을 옹호하는 문학작품을 집필하였으며 방정환은 특히 아동문학을 민족계몽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이원수는 그의 작품에서 어린이를 주체적 존재로 묘사하였고, 송창일은 창작동화집을 발간하는 등 아동 인권을 위해서 힘썼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아동 인권이 여러 가지 차원에서 침해되는 일이 많았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아동 인권침해에는 신체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성적 차원에서 침해되는 일도 많았고, 방임을 통해 그들의 인권이 침해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아동 인권침해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의 과거를 비추어 보면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새롭게 조망하여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의무이다.

문학은 이러한 여러 차원의 인권침해 문제들을 연대라는 가치를 통해 해결하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문학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가지므로 문학을 서술하는 문학가는 문학의 가치에 대해 그 중요성을 중시하며 문학을 서술해야 한다. 특히 아동문학이 가진 아동 친화적이고 아동 인권 옹호적인 속성을 생각할 때 문학 서술가의 책임은 더 중요시 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성격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가진다. 아동인권을 중시하는 성격과는 별개로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적인 성격을 밝히는 실마리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문학과 예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봉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1910년대 문학계에는 이광수 등의 활동으로 근대 문학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3⋅1 운동 이후에는 동인지를 중심으로 예술성만 추구하고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반면에, 동인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은 김소월은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시대 의식을 반영하였다. 한용운 역시 항일 운동의 민족주의 노선을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방정환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여 세계 어린이 문학을 번역·소개하고, 이원수·윤석중 같은 소년 작가를 길러 내기도 했다. 방정환은 ‘어린이 문학’이라는 분야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으로, 『사랑의 선물』을 비롯하여 개작 번안 및 창작 동화를 만들며 어린이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성인의 계몽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아동 문학의 보급·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5년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 구연 대회(童話口演大會)를 열고, 1928년에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를 개최하였다.”라고 한다.


아동문학은 특히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계몽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민족계몽을 통해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것이다. 문학이 가진 연대를 중시하는 보편적인 특성도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이 가진 저항운동적 특성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일제강점기가 가진 아동인권 침해적인 속성을 밝히고 일제강점기에 아동문학을 서술한 주요한 3명의 아동문학가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어떤 방식의 문학 서술을 통해 어떻게 일제에 저항하였는지를 살펴본다. 그 다음에 일제강점기 아동 인권침해 상황의 유형과 현대사회에 던져 주는 의의를 살펴본다. 또, 아동문학의 연대 가치에 집중하면서 현대사회의 아동인권 침해 문제점도 문학이 제시하는 해결책에 따라 해결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이 가진 저항운동적 성격을 민족주의와 아동인권중시사상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이들 문학이 가진 보편적인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며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Ⅱ.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소개


1. 방정환 아동문학

이 절에서는 방정환 아동문학의 예시와 그 문학적 특성에 집중하며 살펴본다. 방정환 아동문학 자체의 성격과 의의에 대해 밝히는 것이 본 절의 목적이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의 진정한 친구입니다. 어린이를 위해 한평생을 살다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정환은 이야기꾼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방정환의 동화를 읽는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큰 즐거움입니다. 그 때, 당시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글로 된 방정환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방정환은 ‘어린이’를 위한 아동문학가이자 아동인권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유산에는 동화나 소설집이 있는데 유명한 것으로는 ‘시골쥐의 서울구경’, ‘느티나무 신세 이야기’, ‘겁쟁이 도둑’, ‘세숫물’ 등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면서 서울 쥐를 따라 한참이나 갔습니다. “자, 다 왔습니다. 저기 새빨간 양옥집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 집이야요.” 보니까 참말 새빨간 칠을 한 우뚝한 높은 양옥집이 높다랗게 서 있었습니다.


방정환의 대표작인 ‘시골쥐의 서울구경’을 보면 감각적 심상 표현이나 사투리 표현이 맛깔난 것이 특징이다. 시골쥐와 서울쥐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아, 서울은 무섭다. 무서운 곳이다! 서울 쥐들은 친절하지만 양옥집도 무섭고 흑사병도 무섭다. 애엣, 가방 구멍으로 내다보고 서울구경은 꽤 한 셈이니 인제는 어서 달아나야겠다.”라고 시골쥐가 마지막 부분에 말하고 시골쥐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시골(지방)과 서울의 관계를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현대에 와서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다. 겁쟁이 도둑 이야기는 도둑질을 하는 겁쟁이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 때 집안에서 훔칠 것을 다 훔쳐가지고, 먼저 들어갔던 도둑이 뛰어나오더니, 쭈그리고 앉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친구를 바라보자마자 “여보게 왜 그러나? 응....” 하고 그 앞으로 가까이 가면서 물었습니다. “목덜미를 맞았어, 목덜미를!”하고 겁쟁이 도둑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를 듣더니 “무엇이 어째? 목덜미를 맞다니?”하고 재차 물었습니다.


겁쟁이 도둑은 결국 목을 잘리게 되는데 다소 잔안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통해 교훈을 주는 아동문학적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세숫물’은 시골사람들의 서울문화에 대한 오해를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손님은 마침 어서 세숫물을 떠 오기만 하면 얼굴을 씻으리라 고대하다가, 하인이 무엇을 놓고 가매 곧 문을 열고 나와 저고리를 벗어 젖히고 손을 담그려다 보니, 그것은 물이 아니라 먹음직한 죽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것은 분명 죽인데, 먹으라고 떠온것일까, 세숫물일까? 먹을까? 얼굴을 씻을까? 아니, 먹으면 또 잘못하는 것이 아닐까? 에라, 서울사람들은 죽으로도 세수하나보다!”


세숫물은 시골 사람들이 ‘세숫물’의 개념을 오해한 것을 문화차이로 유쾌하게 설명한다. 종합하면 방정환은 유쾌한 해학이나 풍자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의 아동문학을 많이 창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어린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한 방정환의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세요. 방정환은 어린이의 가슴 속에 영원한 친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여, 여러 활동을 전개한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 인권운동에 앞장서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방정환이 이렇게 어린이를 위한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그가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날’을 만들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5월 5일을 매년 아동을 위한 날로 기념함으로써 방정환에 대한 세간 사람들의 인식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정환 아동문학의 의의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으로서 대표성을 지니는 인물이 민족계몽을 위해 어린이를 위한 문학을 작성한 자료로서의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이러한 방정환 문학의 민족계몽적 성질은 그 자체로 일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적 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방정환은 아동인권 관련 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된 경력도 있다.




2. 이원수 아동문학

이 절에서는 이원수 아동문학의 예시와 그 문학적 특성에 집중하며 살펴본다. 이원수 아동문학의 사회적 의미와 그 역사적 의의를 함께 살펴본다.


참새는 자꾸 ‘째액 째액’ 울기만 했습니다. 밥풀을 넣어 주어도 먹지 않았습니다. 쌀알을 갖다 주어도 먹지 않았습니다. “먹어! 내가 널 길러 준단 말야.” ‘째액, 째액 짹....’ “엄마를 부르는 거야? 내가 길러준대도...” ‘짹짹’ 우는 소리가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원수 문학은 방정환 문학과 비교하면 내가 느끼기에는 더 감각적이고 따옴표를 많이 사용하는 대화형 문체를 잘 사용함으로써 상황에 대해 더 묘사적인 특징을 지니는 것 같다. 그리고 교훈적인 성격이나 상황에 대한 풍자나 해학을 보여주는 방정환 문학과는 다르게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세계를 표현하는 ‘창작동화’를 더 많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율동적이며 감각적인 것에서 사실적이며 자유로운 형식으로, 외재율 중심의 동요에서 내재율 중심의 현실 참여적 동시로, 식민지하의 감상적‧저항적 문학에서 예술적‧산문적 문학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동화‧소년소설의 특징은 대부분 가난하고 어려운 아동의 위치에서 취하는 서민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현실참여적 소재로 가난하고 불쌍한 아동상을 그려내면서도 미래에 대한 소망과 꿈을 도입해 아름다운 세계로 승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1961년에 매일신문에 실린 이원수 문학의 ‘개나리 피기까지’를 보면 그의 감각적인 문체 경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개나리꽃이 피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개나리는 지난 가을, 잎이 떨어지도 난 뒤로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울엔 어느 나무나 마찬가지로 찬 바람과 눈에게 매를 맞으며 지냈습니다. 그래도 봄이 오기만 기다리며 잠자코 있었습니다.


“눈에게 매를 맞는다”는 표현만큼 그의 작품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없을 것 같다. 그의 생애를 보면 광복과 함께 교사가 되어 근무를 시작하는데 물론 광복 이전인 일제강점기에도 작품생활을 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대표작 〈고향의 봄〉은 1926년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실리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감각적인 성질을 갖는 이원수의 문학도 일제강점기에 저항운동적인 성격을 지닌 문학으로 볼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는 일제에 저항하는 성질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억압적인 일제 강점기에 아이들의 꿈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저항운동적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거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저항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3. 송창일 아동문학

이 절에서는 송창일 아동문학의 예시와 그 문학적 특성에 집중하며 살펴본다. 송창일 아동문학의 사회적 의미와 그 역사적 의의를 함께 살펴본다.


온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형과 아우는 마당으로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조그만 주먹들을 호후 불면서 재미나게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눈은 무엇으로 할까?” “숯으로 하지.” ----(중략)---- 밤이 깊어 형은 쿨쿨 잠을 자지만 아우는 눈사람이 걱정이 되어 자지를 못하고 눈만 또록거렸습니다.


아동문학인 ‘눈사람’은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드는 설레는 감정을 문학적으로 잘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아우’는 눈사람을 다 만든 뒤에도 눈사람 걱정을 하며 밤을 지새는 등 아이들의 동심으로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렇게 일상중심적으로 그의 문학은 서술이 되어 있는데 당시 유행했던 계급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동심을 서술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배게 애기는 참말 이상한 애기지요. 눈도 코도 귀도 없는 두루뭉수리지요. 웃지도 울지도 않고 잠만 자는 벙어리 애기지요. 그래도 그래도 우리 명애는 배게 애기가 제일이라는 걸요. 한시간이라도 베개애기가 없이는 못 견디겠대요. 밤에는 베개 애기를 두 팔로 껴안고 자고 낮에는 등에 업고 놀지요. “자장 자장 워리 자장” 명애는 베개 애기의 어머니지요. 그러니까 명애는 베개애기를 사랑해야 하겠지요. 어머니가 명애를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하겠지요. ----(중략)----


마찬가지로 송창일의 아동문학 작품인 ‘베개 애기’도 일상적인 사건 위주로 작품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송창일의 문학이 일상적인 문체를 가졌다고 해서 일제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송창일(宋昌一)은 일제시대에 창작동화집을 간행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송창일은 1930년대에 동요, 동화, 소년소설, 평론 등에 걸쳐 1929년부터 1959년까지 약 30년간 아동문학가로 활동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품은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각종 아동문학 선·전집에 수록되는 등 한국 아동문학사를 관통하며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송창일은 1930년대 등장한 전문작가로 이전의 소년문단과 구분되는 1930년대 신진작가 군(群)에 속한다. 한국아동문학사에서 1930년대는 이념성이 가라앉고 개인의 일상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문단의 지형도가 변화된 시기이다. 송창일은 193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전문작가로서 계급주의가 만연하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으나, 계급주의 문학에 전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유년 지향적의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송창일은 한국아동문학의 성장 발전기인 1930년대 아동문단에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임에도 그에 대한 개별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송창일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1930년대 아동문단의 특수성에 비추어 살펴봄으로써 한국아동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송창일의 문학은 계급주의적이지는 않지만, 유년의 일상적 상황에 대한 일상적 문체의 의한 서술을 통하여 일제 전체주의에 저항한 작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Ⅲ. 일제강점기 아동인권 실태


1. 신체적 학대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신체적 차원의 아동학대에 대해서 아동노동, 체벌, 군사적 동원을 함께 살펴본다.


일제강점기 감화시설인 '선감학원'에 입소했던 아동들이 구타 등 신체폭력과 성폭력, 강제노역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퇴소 후에도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7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선감학원사건 피해사례 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도는 올 4월16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신고센터 개소 이후 90여 명의 신규 피해사례를 접수했다. 연구를 수행한 경기연구원은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망자·주소불명자·단순전화접수자를 제외한 선감학원 입소자 중 93명이 설문에 응답한 내용을 중심으로 조사 분석을 추진했다. 응답자의 평균연령은 63.5세이며 입소 당시 나이는 11~13세가 40.4%를 차지했다. 입소기간은 최소 1년 이하에서 최대 11년이었고 평균 4.1년으로 나타났다. 2년, 3년간 머물렀다는 응답자가 각각 23%, 22%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 대다수는 기합(93.3%)과 구타(93.3%), 언어폭력(73.3%)을 겪었고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각각 48.9%, 33.3%로 조사됐다. 강제노역과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98%가 풀베기·잡초제거·양잠·축사관리·염전노동·농사·나무베기 등 노역을 한 경험이 있었고 일주일 7일 모두 노역에 참여한 경우가 53.5%에 달했다.


“선감학원(仙甘學園) 혹은 선감원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선감도라는 섬에 있었던 수용소로,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부터 제5공화국 시절인 1982년까지 약 40년 동안 존재했다. 사건 이후에는 경기창작센터로 바뀌었다. 인근에는 선감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선감역사박물관이 있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학원'이라는 이름과 달리 '교육'을 받기는커녕 개간, 농사 등 가혹한 노역에 시달렸다.”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 국가 총동원령에 의해 아동 인권 침해는 실제로는 선감학원의 사례 이외에도 많았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에 동원되는 아동도 있었을 것이다. 일제 치하의 무단통치 시기에는 교원에게도 총포가 보급되었다. 권위주의적인 당시 교원들의 행태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때, 체벌 등의 아동인권 침해 사례는 현대에 보고된 것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의]

1939년 7월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하여 일본인 및 식민지민을 강제로 동원시키기 위해 시행한 명령.


[내용]

1937년 7월 발발한 중일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은 군수 물자 보급과 노동력 공급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전면적인 통제와 동원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 1938년 4월 1일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했다. 이 법률은 5월 5일부터는 조선에도 적용되었다. 이 법률 제4조에서 일본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에는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근거하여 일제는 1939년 7월 7일 「국민 징용령」을 제정하여 10월 1일부터 조선 등 식민지에도 시행했다.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동원된 아동들은 실제 전쟁에 군사로서 참여할 뿐만 아니라 군수물자 지원 등 후방지원에도 나섰을 것이다.


〈아동권리선언〉의 선구는 1922년 영국의 국제아동기금단체연합이 발표한〈세계아동헌장〉으로, 이는 모든 아동의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행복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부여받아야 함을 세계를 향해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1924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연맹회의〉에서 제네바선언 5개항이 채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UN)은 제네바 선언을 재검토하여 10개 조항으로 확장된〈아동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이 1959년 11월 20일 제 14차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UN 아동권리선언은 2차대전 이후에 발표되었지만, 그 선구인 ‘세계아동헌장’은 1922년 발표된 것으로 국가총동원령 발표 이전이다. 아동인권에 대해 이미 기본적 합의는 존재하였던 것이다. 일제 제국주의의 이러한 행태는 강력히 규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2. 정서적 학대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정서적 차원의 아동학대에 대해서 일본어 강제교육, 가족제도 파괴시도,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별대우를 함께 살펴본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은 식민지 조선의 제도권 교육기관과 사회적 교육기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규제함으로써 식민지 지배를 위한 주요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민족주의계 사립학교와 종교계 사립학교를 규제하기 위해 1908년에 시행된 ‘사립학교령’과 한일합방 이후 1911년부터 해방까지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에 근간이 된 ‘조선교육령’은 38년간 조선의 학령기 아동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강제된 교육의 형태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러 번에 걸친 조선교육령 개정을 통해 식민지 조선은 점진적으로 동화정책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중략)----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조선교육령 공포 시기를 기준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일본어 교육이 이루어 졌으며 지역 별 해득 수준과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일본어 교육의 보급시기, 정체시기, 확장시기로 나누어 통시적 관점에서 그 실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아울러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조선총독부관보’와 ‘신문자료’등의 사료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일제강점기의 교육정책은 식민지 지배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무단통치, 문화통치 그리고 민족말살통치까지 통치 시기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사립학교령’과 ‘조선교육령’은 성인 뿐만 아니라 아동에 이르기까지의 ‘강제된’ 교육으로 보아야 한다.


1938년 3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여 일본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조선어 과목을 명목상 선택과목으로 지정하여 사실상 교육을 금지시켰다.

1940년 8월에는 한글신문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시켰고 창씨개명을 강요해 조선인들의 이름과 성도 빼앗았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한글 연구를 탄압하였고, 국어전해 상용운동을 벌여 조선인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였다.

1943년 3월 제4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중학교에서 조선어 과목 교육을 금지시켰다.


일제의 이러한 조선어 말살 정책은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이루어진 여러 정책들이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제는 이뿐만 아니라 가족제도를 변경하는 정책을 통해 조선의 전통적인 가족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였다. 일본인(내지인)와 한국인 간 차별대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차별에 의해 발생한 것이 바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중학교의 야구 시합 과정에서 일본인 학생들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으로 충돌이 일어나 학생들이 구속 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한 항의로 동맹 휴학 당시의 사진. 이 사건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의 아동은 일제에 의해 차별을 받아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잦았지만 그들 나름의 운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였다.


3. 성적 학대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성적 차원의 아동학대에 대해서 위안부 과정에서의 아동인권을 성적으로 침해한 사례를 함께 살펴본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대표 朴淳金, 尹貞玉, 李效再)는 金學順씨(67)에 이어 일제치하 위안부였던 文玉珠씨(67)의 자진신고를 받았다고 6일 발표했다. 文씨는 협의회가 지난 9월18일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한 이후 최초의 신고자이자 金學順씨에 이어 국내에서 밝혀진 두번째 종군 위안부이다. 이에 따라 협의회 산하 정신대 연구팀 윤정옥씨와 조혜란씨는 5일 文씨의 거주지인 경북 대구에 내려가 위안부로서 체험담을 청취했다. 협의회가 전하는 증언 내용에 따르면, 文씨는 19세때 안면이 있는 남자가 "가면 참 좋고 돈 잘 번다"고 하는 소리에 속아 따라가 42년 7월부터 해방후인 46년4월까지 약 3년6개월여동안 위안부생활을 했다는 것. 그는 일본군을 따라 버마, 태국, 야유타이 등 각지로 끌려다니며 위안부생활에 시달렸으며 야유타이에서는 일본이 패전으로 군인환자가 급증하자 야전육군병원에서 간호사 조수노릇을 11개월가량 하다가 해방후 귀국했다. 간호사 조수노릇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강제노역이었고, 위안부시절에는 군표를 받아 당시 돈 1만여원을 저금했지만 버마에서 통장을 분실했다는 것.


국민학교 아동까지 근로정신대로 끌어가고, 종군위안부 증언자가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盧淸子할머니(72, 아명 노쌍녀)가 15일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가 개설하고 있는 `정신대 신고전화'를 찾아왔다. 그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진땀이 나고 이가 갈린다"면서 긴 세월에도 삭지않는 분노감을 드러냈다.

위안부 할머니의 진술처럼 위안부 생활은 진실된 것이다. ‘국민학교 아동’들까지 종군위안부로 끌려 가서 일제 군대의 위안부 역할을 했다는 것이 할머니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일본군 위안부(日本軍慰安婦) 또는 일본군 성노예 제도(日本軍性奴隸制度)는 일본의 전쟁범죄 중 하나로, 일본 제국 정부의 관여 및 묵인 하에 자행된 식민지 및 점령지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시강간 등의 성범죄 행위를 이른다.


위안부 사건은 일제가 저지른 부인할 수 없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위안부 동원도 있었다. 국제법적으로는 아동인권침해와 전시성폭력범죄에 해당하며 이는 명백한 아동 성인권 침해 사례에 해당한다.


Ⅳ.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의의


1. 현대사회의 문제점

이 절에서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으로서 아동인권 침해사례를 살펴보고 아동인권을 중시하는 현대의 교육사상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본다.


현대사회는 매우 복합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주호민씨 사태로 대표되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는가 하면, 서이초 사건으로 대표되는 교권침해가 중심이 되는 아동인권 관련 사건도 있었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회는 그 구성원이 모여 합의에 따라 구성이 되는 것이다. 주호민씨 사건은 특수교사의 아동에 대한 폭언을 주호민씨가 녹음하여 그것을 아동인권침해로 경찰에 신고하여 결국 법원까지 간 사건이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특수교사에게 유리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동인권을 중시하는 사상에서 보자면 특수교사의 폭언도 분명 잘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서이초 사건도 명백한 학부모 민원으로 인한 교권침해 사례이지만, ‘연필사건’으로 대표되는 아동지도 미숙이 있었음도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문제가 되는 등 소년이나 아동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어른들의 지도 미숙도 그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동인권을 경시하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2020년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은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동은 반복적인 폭행과 방임을 겪었고, 여러 차례 신고가 있었음에도 적절한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현대 사회는 그 복잡성과 혼란을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가정 내의 아동인권침해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법적이고 사회적인 제도 변경이나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최근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있었으나 본회의를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인 안창호 국가인권위 위원장도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반대하고 최교진 교육부장관도 이에 반대하는 등 서울시의회의 독단적인 의회행정에 문제가 제기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청 차원에서 제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구도 속에서 교권 침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그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아동인권을 중시하는 사상적 흐름 속에서도 이러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2. 아동문학의 연대가치 재인식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에 담긴 연대의 가치를 재인식하며 현대 아동인권 침해문제의 해결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은 민족주의와 저항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조선민중 전반에 대한 연대의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이러한 성질은 민족계몽의 성격을 갖는 방정환의 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이원수와 송창일의 문학은 감각적인 경향이 강해서 조선민중 전반에 대한 연대가치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원수와 송창일의 문학이 조선민중에 대한 연대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 문학은 교훈적이기보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문체를 추구하기 때문에 더 아동친화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선민중에 대한 연대가치를 더 많이 가졌다고도 볼 수도 있다.

방정환이 아동문학하면 대표적인 인물로서 언급이 되는 것은 어린이날로 대표되는 그의 아동인권 친화적인 행보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방정환의 문학작품을 보면 교훈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도 동시에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방정환이 제일 유명한 이유는 그가 아동인권을 위해 활동하다가 일제 순사에 체포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외부적인 경력요소를 배제하더라도 방정환의 아동문학은 그 자체가 민족계몽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적이고 사회적 약자인 조선민중에 대해 연대를 지향한다.

이원수와 송창일의 문학도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문체를 지향하며 다양한 아동문학작품을 남겼다. 암흑의 시대에 외친 아동인권이야 말로 전체주의적인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적이다. 그리고 이들 문학 또한 사회적 약자인 조선민중과의 연대를 지향하였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아동문학의 연대의식을 재인식하면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으로 제기된 여러 학대 문제나 소년법 개정 문제 그리고 교권과 학생인권 침해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여러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3. 현대 사회문제의 해결방안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에 담긴 연대의 가치를 재인식하며 현대 아동인권 침해 문제점을 심화적으로 검토함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사회는 복잡계로써 여러 정보들이 범람하고 그 가운데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아동들의 인권은 말할 필요도 없이 크게 침해되었을 것이다. 현대 아동인권 침해사례로는 가정 내 아동학내나 학교에서의 아동학대, 그리고 아동들의 법 위반 행위로 인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 여론으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아동 지도 미숙의 문제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해결방안이 없다. 하지만 개인이 가진 힘으로 여론을 바꾸고 나 스스로가 먼저 아동의 인권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그것이 해결방안이 될 수도 있다. 방정환의 아동문학으로 대표되는 민족계몽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이며 조선 민중에 연대하는 태도를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들 문학이 가지는 연대의 의미를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로써 다시 고찰할 때, 우리는 연대와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의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아동존중의 태도는 현대사회의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아동학대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학일반론적으로도 문학 자체가 가지는 연대지향적인 성격도 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이 가지는 사회적 약자와 아동에 대한 연대의 가치는 현대사회에서 재고할 만큼 그 가치가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른들의 아동을 존중하는 태도가 선행될 때, 최근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과 아동인권 사이의 교착상태에 빠진 문제나 가정 내 아동인권 침해 사례 그리고 촉법소년 하향여론으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아동지도 미숙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V.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저항운동적 성격

1. 민족주의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에 담긴 민족주의 가치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은 민족계몽적 성질을 지니는 것도 있고 단순히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문체로 쓰인 것도 있다. 그런데 민족계몽적 성질을 지니는 것으로 대표되는 방정환의 문학은 민족주의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이원수, 송창일 문학은 교훈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이들 문학이 민족주의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원수, 송창일의 문학 또한 전체주의적인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서 반-제국주의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적어도 안티-민족주의, 그리고 반민족주의 성향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방정환은 ‘어린이’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자신의 문학작품을 통해 드러냈는데,‘어린이’의 정체성은 ‘조선’이라는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그들만의 특성을 통해 이상적 공동체를 구현해나간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근대에 대한 경계로 볼 수 있다. 근대는 ‘어린이’를근대적 주체로서 민족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존재로 호명하였다. 그러나 방정환의 문학 작품 속 ‘어린이’는 조선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근대적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조선’이라는민족은 ‘어린이’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공동체는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설정은 ‘어린이’를 근대 국가에 복무해야하는 대상에서 벗어나게끔 만들었다. 이는 민족의 범위를 넘어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현하려는 방정환의 목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방정환은 어린이 문학을 통해 이상향을 드러내려고 시도하였다. 방정환이 고민한 ‘어린이’ 정체성은 ‘조선’이라는 민족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라는 전체주의 속에서 이상향이라는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사회의 입장에서는 반동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을 바르게 기르고 가르쳐야 한다는 소파의 일관된 정신은 1920년 그가 일본에 유학한 시기부터 본격화되었다. 방정환이 유학 기간 동안 일본에서 받은 영향은 외국 작품을 번안하거나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동화구연을 한 것, 그리고 개벽사의 일을 도우면서 『어린이』지를 발행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근대 일본 아동문학의 중심인물인 이와야 사자나미(栗谷小波) 혹은 오가와 미메이(小川未明)와 사상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당시 일본의 주요 잡지였던 『소년세계』(少年世界), 『아카이도리』(赤い鳥), 『킨노후네』(金の船)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유인즉 방정환의 어린이문학교육은 독립을 향한 의지와 투철한 민족주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번안 작품집 『사랑의 선물』과 소년운동의 실천적 모체인 『어린이』지에 선별된 작품은 식민지 상황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민족의 고통을 동반한 그의 작품은, 식민지 시대를 사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우선시했다. 특히, 어른에게 구박을 받거나 매를 맞는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데, 식민지 조선의 어린이를 동정하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을 읽히는 데 주력했다. 이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성립되기도 한다. 약자와 강자로 정리되는 관계는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특히 방정환의 문학이 민족주의적 특성을 갖는 주요 요인으로는 그의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고 하겠다. 식민지 조선의 절대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가짐으로써 당시 아동학대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민족주의에 담긴 연대가치를 우리는 현대에 와서 재인식하며 우리는 현대의 아동학대 문제 등의 연대 약화 문제나 소수자 차별 및 배려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동인권중시

이 절에서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에 담긴 아동인권중시 사상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방정환, 이원수, 송창일의 문학은 모두 아동인권을 중시하는 사상 가운데 생겨났다. 산업혁명과 두 번의 세계대전의 아동착취에 대한 반성적 성격으로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아동인권 중시사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방정환이 아동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서 괴리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1919년의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방정환(方定煥)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가 1927년 날짜를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1923년 5월 1일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 배포되었는데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방정환은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부탁한 것이다. 첫 번째 어린이날의 구호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5월 5일로 정하여 행사를 하여 왔으며, 1961년에 제정 · 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또한 5월 5일로 하였고, 1973년에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5년에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201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그 다음 비공휴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날은 어린이가 따뜻한 사랑 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며, 불우한 어린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 위로하고, 모범어린이 및 아동복지사업의 숨은 유공자를 발굴, 표창하는 한편,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사를 실시하여 체력향상 및 정서함양을 도모한다. 각 시 · 도, 시 · 군 및 단체별로 어린이가 참석하는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기념식전에서는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낭독하고 착한 어린이 · 청소년을 시상한다. 또한, 어린이체육대회 · 웅변대회 · 글짓기대회 · 가장행렬 · 묘기시범 · 밤불꽃놀이 · 어린이 큰잔치 등을 거행하기도 한다.


최초의 어린이날은 5월 1일 이었으나, 광복 이후 5월 5일로 바뀌었다. 방정환의 이러한 어린이 운동 뿐만 아니라 이원수와 송창일도 자신만의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어린이 인권 중시 사상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Ⅵ. 결론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의 저항운동적 성격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방정환, 이원수, 송창일 각각의 문학을 자세히 살펴보고,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아동인권침해 실태에 대해 학대 사례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현대사회의 아동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문학의 민족주의사상과 아동인권 중시사상도 살펴보았다. 이 논문이 일제강점기의 아동문학의 연대가치를 재조명하여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현대 사회는 복잡계로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사회적 약자의 삶은 무시되기가 쉽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을 다시 읽으며 역사를 바로 알고 냉혹한 현실인 일제강점기에 절대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아동들의 인권을 수호하고자 노력한 이들 문학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문학의 가치인 연대를 일제강점기 문학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개개인의 노력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더 밝고 빛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 단행본과 논문

김젬마(2017), 〈일제강점기 송창일의 아동문학〉, 어린이문학교육연구

신정아(2019), 〈방정환의 민족주의와 어린이 문학교육 -일본의 영향을 중심으로-〉, 동아인문학

양민아(2011), 〈방정환 문학에 나타난 '어린이' 연구〉, 울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이상원(2021),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과 일본어 교육의 실태 - 사회적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 인문사회과학연구

이재은(2004), 《초등학생을 위한 방정환 동화 33가지》, 서울:세상모든책

백석기(1997), 《이원수 창작동화-바둑이는 어느 곳에》, 서울:웅진출판주식회사

• 인터넷 자료

김경제, 〈어린이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938)

김수현(2020), 〈"선감학원 아동 대다수 강제노역…시신 처리에도 동원"〉, 한경뉴스(https://www.hankyung.com/article/2020120710047)

김용하(2006), 〈UN아동권리선언〉,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0305&pageFlag=&sitePage=)

서현 안(2014), 〈이원수(李元壽)〉, 한국시집박물관(http://xn—zb0b2hu97a1ya31wlzk6ku.org/?mod=document&uid=727&page_id=30%20Aug%2003,%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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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2025.12.25

뭐에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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