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작성한지 이제 1년 반이 다 되어가네요. 이제야 코스웍이 끝나고 3년차 박사과정이 되는데, 제가 입학할 때 3년차 박사과정 학생 (4년만에 이번에 졸업한)에 비하면 저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말 그대로 학생일 뿐입니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저는 SPKYK로 표현되는 소위 명문대 학부 출신이 아니었고, 수능 영어공부조차 하지 않았던, 수학과 과학만 잘한다고 생각했던 학생이었습니다. 덕분에 우여곡절을 겪고 이곳에 도착해서 창피하지만 대학원생으로서 자발적으로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을 듣기도 했죠.
저는 나름대로 제 생각이 굉장히 확고한 사람이고 원하는대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참 사람을 많이 바꾸더라구요. 특히 학과 교수님들 중 각 분야의 1% 이내라고 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교수님들이 너무 많았고 소위 ‘미국뽕’에 취해 그들의 실적과 제 실력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제 능력은 그 정도가 아닌데 말이죠.
이제 2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그들과 비슷한 선상에 서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에 오른 것 같습니다. 부끄러울 만큼 부족했던 영어도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레 늘었습니다. 물론 유창하다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이제 아무런 생각없이 가서 제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수준이지만요.
박사 어드미션을 받고나서부터 제 인생의 커리큘럼은 어느정도 짜여진 듯 했습니다. 좋은 저널에 논문 많이 내고, 지도교수의 인맥을 이용해서 포닥을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이러한 계획은 이곳에 도착한지 약 6개월전부터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한국 학계가 가장 최후순위에 놓여있네요.
아마 졸업할 때까지 제 인생 계획은 계속해서 변할지 모릅니다. 다만 이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라 제 능력에 대한 자신과, 그리고 더 많은 기회들 때문입니다. 얼마전 스승의날에 이전 지도교수님과 더불어 몇몇 한국의 교수 멘토님들과 통화를 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특히 아카데미아의 길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실망 하시더군요. 그분들의 염려 역시 이해합니다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특히나 시장이 너무 급변했고 (특히 저는 배터리 분야입니다) 너무나 많은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김박사넷은 아마도 국내에서 대학원 커뮤니티로 가장 큰 곳 일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알게되었던때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하이브레인넷과 더불어 그나마 대학원 정보를 얻기 가장 용이한곳이 되겠죠. 저는 후배들이 대학원 진로에대한 고민을 해오면 언제나 대학원 졸업후의 장밋빛 생활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힘들수 있는, 특히나 미국에서 지내는것들에 대한 힘듦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제가 한때 취해있었던 미국뽕에 취해있는 친구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해주는 편입니다.
이는 비단 미국 대학원을 진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행히 대학원에 진학하신 여러분들은 나름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 우리가 더 진일보해가는 모습을 봐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박사과정, 그리고 포닥 몇 년은 당신들의 연구를 비롯한 인생 철학을 바꾸기에 충분한 기간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바꿔서, 외국에서 대학원/포닥 과정을 거치거나 국내의 타 대학원 및 기관에서의 경험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분명히 연구 외적으로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지도교수 및 상사와의 철학에 있어서 어긋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것들이 참 많더라구요.
이전에 작성했던 제 글이 부끄럽듯, 지금의 글도 아마 내년, 그리고 미래의 제가 보면 참 부끄러울 것 같아요. 박사과정 학생이 세상을 안다는 듯 작성하는 글이 뭐라고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제가 그랬듯 이러한 간접적인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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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2023.06.17
남은 박사 생활 잘 마무리 하시길
2023.06.18
주변의 정말 뛰어난 학생들로부터도 많은 자극과 좌절(?)을 경험할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스쳐지나갔나요?
2023.08.29
국내 아카데미 복귀를 후순위에 두게 되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럼 그 외에 어떤 방향들을 고려중이신건가요?? 미국 내 인더스트리로 나갈 생각이신건가요??
2023.06.17
2023.06.18
20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