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할 때 되니 오전 1시 반이네요. 출장이나 출근없이 마지막으로 쉰 날은 2개월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김박사넷, 브릭, 한빛사.... 여러 글들 보다보면 다들 대단해보이고, 연구자로서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가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다들 힘든 대학원 생활을 거쳐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 기업 /대학/연구소 등에서 우리나라를 발전시켜나가겠죠.
대학원 5년차에 들어가는 저는, 아직도 연구를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학교 나와서 행정업무 하면서 하루동안 만든 파일이 총 87개네요. 교내 행정 서류, 기업 내 서류, 식대, 자문비, 회의비, 출장비, 물품 구매 재료비, 실험분석비, 인건비, 회의자료, 과제 보고서, 특허 관련 서류 등을 만드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갔습니다. 연구자가 아니라 행정직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입학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나둘씩 일이 늘어나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도교수님의 과제 행정일을 하다가, 조금 지나니 교수님의 선후배 교수님들의 과제 행정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교수님들 개인사업, 3명 교수님의 모든 과제, 실험실 행정, 학과 행정, 대학원 행정, 학회 사무국, 실험실 관리, 학교 간 mou, (교수님 이름의) 책 집필 작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해당 교수님들이 학과장, 대학원 학과장 등도 하고 계셔서 해당 업무도 다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많지만, 하나 둘씩 넘어오다가 결국 20여명의 대학원생 중 행정작업은 모두 저 혼자 하게 됐네요. 저는 분명 거절했는데, 전문연 중이라 어차피 그만두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내일도 아침에는 학교 발전위 회의, 오후에는 업체 간 미팅, 대학교 평가인증 대책회의, 저녁에는 공동 과제를 하는 정출연과 회의를 해야 합니다. 이제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연구로는...저는 올해 6편의 sci 1저자 논문을 투고했고, 그 중 몇 편은 accept되었고 몇 편은 아직 revision 중입니다. 대부분이 김박사넷에서 자랑하는 네이처컴 급이니 하는 논문들과 비교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이고, 과제 목표 달성 등 때문에 부랴부랴 최소한의 실험만으로 가까스로 q1~q2인 저널에 낸 논문들입니다. 카이스트로 간 친구는 네이처 자매지에 냈던데, 저는 그런 연구를 할 시간도, 기회도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친다고 1류 저널들에 논문을 낼 실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논문 편 수도 IF도 별로 관심은 없습니다만, 그런 수치보다 실제로 학계에, 학문에 중요한 연구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과제 정량 목표에 치여 살고 있네요.
올해도 제가 쓴 과제계획서로 몇 개 과제를 수주했습니다. 여러 교수님들 명의로 과제계획서를 쓰다보니, 공고 하나당 몇 개씩 내게되어 그 중 어쩌다 하나씩 선정되는 것 같습니다. 수주를 해도 좋은 소리는 못 듣습니다. "연 2억짜리가 되야지 7천만원짜리를 따와서 손해봤다" 이번 연구재단 과제 선정 후 들은 말입니다. 1년에도 십수편의 서로다른 과제계획서를 쓰다보니, 교수님은 이제는 과제계획서 내용을 거의 읽어보지도 않으십니다...
이제 학기 초인데, 교수님들 대신 학부 수업도, 시험 출제도, 채점도, 감독도 해야 합니다. 벌써 학교 가기가 두려워지네요. 지난학기는 감독 14번, 채점 및 점수입력은 5과목 했네요. 행정실 인력 일도 겸하고 있다보니 교수님들의 개인적인 요청과 행정실 요청이 더해져 더더욱 일이 많아집니다.
저는 인건비도 최대치로 받고 있고, 때로는 힘든 환경에서 노력하는 다른 대학원생들보다 배가 부른 고민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인데, 연구에 대한 고민과 성장보다는 항상 닥쳐오는 일만 급급히 처리하다보면 날짜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뀝니다.
이상 한밤중 주저리주저리였습니다~ 괜히 신세한탄만 해서 죄송하네요. 다들 하시는 연구 잘 되시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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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2025.09.15
이 정도면..님이 그냥 교수인데요??
IF : 1
2025.09.15
결국 그 상황에서 과제논문들을 탑으로 이끌어가는지가 중요할듯. 고점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하고, 이미 양은 잘 채우고 있는거 같음. 나라면 교수님과 면담해서 일을 하는데 힘들다. 안하겟다는게 아니라 밑에 석사/박사를 저에게 맡겨주시면 이 친구들 리소스를 활용해서 하겟다 라고 딜을 치고, 그 친구들 활용해서 잡일 넘기면서 의미있는 논문에 더 시간을 할애할듯. 이미 좀 제안서등 논문과 관련없는 일을 잘한다는 인식이 박혀서 바꾸기는 힘들듯.
아니면 연구실 바꾸는건데 현실적으로 그건 힘들거 같고 자기합리화 하면서 나아갈수 있는걸 찾는게 중요. 지금 하는 시간낭비 같은 능력도 추후에는 많이 도움될꺼임. 밑에 애들을 활용할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고 생각하고 잘 버텨보시길. 화이팅.
2025.09.15
2025.09.15
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