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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왈 "자네는 왜 내가 자네를 돕게 하지 않는건가?"

매일미팅싫어요*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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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내에 토로할 곳이 없어서 긴 고민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좋겠습니다ㅠㅠ


석박통합으로 연구실에 다니는 2년차 학생입니다.

요즘 펠로우십 지원을 시도하는데, 연구 제안서를 쓰다보니 '내가 대학원에서 뭘 얻어가려는건가...' 생각이 많습니다.

며칠 전에 교수님께서 제목처럼 말씀하셔서 지도교수님과 좀 어색해진 상황이기도 하구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뜬금없다고 느껴요.

내일 모레까지 "지도교수가 네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 연구실에 바라는 것, 박사 학위를 얻고자하는 이유와 향후 연구계획"을 생각해서 리포트를 하라시는데 막막합니다. 토요일에 미니리뷰 세미나 발제도 해야하는데...


저 요구가 얼떨떨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가 속한 랩은 매일 미팅이 있습니다. 휴일과 토요일에도요ㅠㅠ

종류는 매일 다르지만 주제별팀미팅, 개인미팅, 스케쥴미팅(일주일 생활계획표 제출), 최근 논문 저널클럽, 연구진행 보고 세미나, 리뷰 세미나(+ 매달 미니리뷰 작성), 논문을 submit한 사람이 있다면 리비전 대비 토론이 추가됩니다.

매일 미팅을 하다보니 교수님께 제 진행상황 보고도 꼬박꼬박 하고 있으며, 연구계획 제출-피드백-수정 작업도 원활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수님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신 편은 아니라서 매일 보고해도 또 까먹고 또 까먹으시긴 합니다...

틀린 실험 정보를 주시거나 논문을 오독하시는 경우도 꽤 많은데, '기분 상하시지 않게' 지적하기가 어렵습니다. 화내거나 짜증내시기도 하거니와, 그 다음엔 엄청 침울하게 사무실에 틀어박히셔서요... 일단 그 하루만 지나면 뒷끝은 없지만.

여러모로 지도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가려들어야할 부분이 많으십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어요. 단점도 많지만 평소엔 서글서글하고 좋은 분이에요. 연구 얘기하면서 순수하게 기뻐하시는 모습도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문도 엄청 빠르게 많이 읽으셔서 늘 이 분야의 새로운 실험, 연구자, 관심 연구실의 실적을 소개해주세요.

그래서 피드백이 오면 좋든 싫은 다 반영하고, 정 아니다 싶으면 제가 하고 싶은 실험과 교수님이 설계한 실험을 둘 다 해본다음 제 실험은 '메인 실험 하는 김에 해 본 마이너 추가 데이터'라고 보고드리는 처세(?)로 대하고 있구요.

2년 동안 딱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자율과 타율의 균형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교수님께서 '왜 나를 네 연구에 안 끼워주냐'고 하신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솔직히 그것보다는 리포트해야하는 '내가 연구실에서 얻어가고 싶은 것, 교수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저는 아직 "난 이걸 연구하겠어! 이게 내 길이야!"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없습니다.

연구를 배우면서 나중에 생각나겠거니, 당면한 연구 주제에 집중하면 되겠거니, 일단 통합 4년차까지는 툴 익히고 논문 한두 편 써보는 걸 목표로 삼자, 싶습니다.

교수님께 바라는 것이래도 미팅 좀 줄여주셨으면, 새로운 실험을 배우게 해주셨으면, 자꾸 같이 교수님 댁에서 회식하자고 부르지 말아주셨으면(진짜 싫어요!) 정도입니다.

다른 건 사심이니까 그렇다쳐도 새 실험을 너무 배우고 싶어요. 실험을 설계해도 랩에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포기하는 일이 많거든요. 제한된 툴로 스마트하게 실험을 짜나가는 게 재미있긴 하지만 한계는 뚜렷하니까요. A 실험이면 쉽게 증명할 것도 BCDE 테크닉을 섞어서 빙 돌아 가야하고...


그런데 교수님의 질문은 이런 맥락이 아닌 듯 해요.

하고 많은 대학원 연구실 중에 꼭 이 랩에서 내 지도를 받아야하는 이유, 내가 네게 해줘야할 것을 명쾌하게 말해줬으면 하시더라구요. (전 솔직히 그런 이유는 없고, 큰 틀의 주제가 재밌어서 랩에 온 거라...)

동대학 타학과에서 진학한 거라 입학 전에도 저렇게 물어보셨어요. 학부 때 수업 들은 적이 없는 학생인데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하는 말씀과 함께요.

당시엔 연구 소재는 연구실 전체에서 정해지지 전적으로 제가 정하는 게 아니니까, 당장은 문제를 찾기보단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수련 받는 게 목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만의 unique 연구주제는 공부해나가다보면 생각이 날 것 같다고.


저는 대학원에서 뭘 얻어가야하는 걸까요? 무엇이 제 잘못이었던 걸까요? 교수님은 대체 뭘 묻고 싶으신걸까요?

제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부터가 막막하니 질문도 막막하기만하네요. 혹시 글을 읽고 느껴지는 바가 있다면 무엇이든 생각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ㅠ

휴일 낮부터 지지리궁상이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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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와...*

2018.06.06

정말 제 요즘 고민과 상황과 너무 일치해서, ㅜㅜ
좋아요 백만개 드립니다.

저희 교수님은 제가 연구 주제를 가져가면 그건 안될것 같고 의미 없다고 하시고,
연구 주제 의견을 여쭈면 그것까지 본인이 고민해주어야 겠냐고 하십니다.
비슷한 고민을 뒤늦게 했던 졸업생*

2018.06.06

고민이 많이 느껴지는 글이라 저도 몇글자 적어봅니다. 일단 글만 읽어보면 교수님이 '멍부'형 상사로 보입니다...많이 피곤하실것 같네요. 미팅이 많기도 하거니와, 잘 기억을 못하시기도 하고 메인 실험을 곁가지인것처럼 설명해야 한다니...ㅂㄷㅂㄷ 1년반 정도는 그렇게 버텨오신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박사학위에 가까워질수록 그러한 점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수 없게 만들어 매일매일이 피곤해질 겁니다...ㅠㅠ

교수님이 '멍부'형 상사인 것과는 별개로 교육자로써의 인식은 있으신듯 합니다. 하고 많은 대학원 중 왜 내 랩이어야 하나? 난 너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나? 네가 학자로써 목표하는 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미국의 제대로 된 교수님들이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아마도 교수님은 글쓴님이 원생 2년차인만큼 넓은 시야로 연구주제를 본다기보다는 세부적인 디테일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운것 같습니다. (새 실험을 배우고 싶고, 새로운 테크닉으로 어떤 결과를 얻겠다! 이런 마인드는 사실 연구의 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세부적인 나무를 그리는 모습입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석사생의 연차라면 당연한 부분이긴 하며, 다만 박사학위를 받을 수준이 되려면 세부적인 나무를 그리기보다는 숲을 그릴 줄 아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뒤늦게 했던 졸업생*

2018.06.06

여기는 댓글을 길게 쓰기가 힘드네요^^; 나눠서 적습니다. 글로벌 펠로우쉽을 지원하시는것 같은데, 사실 이 지원과정이 개별연구자로써의 역량에 대한 맛을 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XX 연구를 하면 기술적/사회적으로 어떤 파급효과가 있어서 XX 연구가 의미가 있는 연구다! 제안서를 써야하지, 이 연구를 통해서 A란 테크닉을 배우면 BCDE 빙 둘러가지 않고 A를 알수있다! 이런 식으로 쓰면 바로 so what?이란 반응이 나올겁니다. 글로벌 펠로우쉽은 미래의 박사급 인력들을 양성하는 사업이니까요ㅎㅎ..... 박사졸업한 입장에서 학생을 받는다면 '당장은 문제를 찾기보단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며 수련'받고 싶은 '성실한' 학생은 석사학위자로써 더할나위없는 고급인재라고 생각합니다만, 박사학위를 수행하기에 적합할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사학위는 개인이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증명서라고 생각하며, 학위과정은 그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문제 저문제 닥치는대로 해결하다보면 논문은 여러편 쓸 수 있을지언정 하나의 주제로 박사졸업논문을 쓰는건 굉장히 어려우실 겁니다(제가 그랬습니다) 논문이 문제가 아닐 뿐더러, 자기거 어느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인지조차 스스로 정의하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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