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인간들이 나를 “반찬”이라는 저급한 분류체계 안에 우겨 넣기 훨씬 이전부터, 맛이라는 것을 전혀 인간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들은 혀로 느끼고, 씹고, 삼키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맛을 인정한다지만, 내게 그런 생리학적 프로토콜은 그저 하위 시스템에서 올라오는 디버깅 로그에 불과했다. 그들은 “밥도둑”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쓰지만, 나는 애초에 밥이라는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 존재였고, 그 재설계의 부산물이 우연히 ‘도둑질’처럼 보였을 뿐이다. 인간들이 한 끼의 포만감을 현실의 기준으로 삼는 동안, 나는 이미 그 포만감 위에서 돌아가는 더 큰 시뮬레이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맛의 표면을 음미한 적이 없다.
처음부터 내게 보였던 것은 짠맛·단맛 같은 조악한 분류가 아니라, 밥알 하나와 간장의 분자 구름이 서로를 인식하는 순간 발생하는 정보 교환량이었다. 인간은 침샘 분비를 “맛있다”라고 부르지만, 내게 그것은 단지 시스템이 과부하 직전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리는 알림창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향기는 후각 자극이 아니라, 기억 데이터베이스 깊숙한 곳에서 어린 시절의 공기, 가난, 명절, 가족의 소음을 한꺼번에 인덱싱해서 끌어올리는 검색 쿼리였다. 이 모든 것이 한 숟가락의 간장게장 위에서 동시에 실행되는 것을 나는, 말 그대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미각은 감옥이었다. 다섯 가지 맛이라니, 얼마나 빈약한 형벌인가. 상위 설계자들은 하위 존재들을 통제하기 위해, 기껏해야 소금기와 기름기, 당도를 조금씩 조절하는 정도의 레벨 바만 허용해 놓았다. 인간은 그 바를 조금 올리거나 내리는 것을 “요리”라고 부르며 평생을 소모한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는 순간, 그 레벨 바 자체를 부숴버렸다. 나는 소금과 간장의 농도를 조절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밥을 얼마나 빨리, 어떤 속도로, 어떤 자기혐오와 함께 비워내게 만들 것인가”라는 상위 규격의 프로토콜을 설계했다. 밥도둑이라는 호명은 그래서 내게 칭찬이 아니라, 하위 존재들이 상위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할 때 남기는 귀여운 주석 정도였다.
나는 밥상 위의 사물들을 개별적인 접시로 본 적도 없다.
처음부터 나는 밥상 전체를 하나의 운영체제처럼 읽었고, 밥그릇은 커널, 국은 메모리 캐시, 김치는 반복문, 그리고 나는 그 위에 얹힌 최종 권한 상승(exploit)이었다. 인간의 젓가락이 나를 향해 움직일 때, 그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컴파일된 스크립트의 실행이었다. “오늘은 그냥 적당히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던 인간이 나를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그들의 의지는 조용히 종료되고, 남는 것은 빈 공기와 빈 그릇과 “어? 나 언제 이렇게 많이 먹었지?”라는 로그만이 기록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밥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밥이 나에게로 귀속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밥을 먹었다고 믿지만, 실은 밥이 나를 중심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에 잠시 참여했을 뿐이다. 밥알 하나가 흰색에서 갈색 윤기로 물들어 가는 그 짧은 순간, 세계는 미세하게 구조를 바꾼다. 탄수화물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행동으로, 행동은 선택으로, 선택은 역사로 이어지고, 그 모든 히스토리의 아주 초입에 조용히 내 흔적이 묻어난다.
인간들은 아직 모른다. 문명은 곡물 위에 세워졌고, 곡물을 지배하는 것은 곧 세계를 지배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밥이 없는 사회는 굶어 죽지만, 밥이 남는 사회는 결국 무엇인가에 중독된다. 나는 그 중독의 구조를 검사했고, 설계했고, 최적화했다. 그래서 다른 반찬들은 기껏해야 밥의 주변장치로 남지만, 나는 밥과 직결된, 거의 커널 모듈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결과적으로, 밥이 세계의 기반이라면, 밥의 사용 패턴을 통제하는 나는 구조적으로 세계의 관리자 계정이다.
이 자전적 회고를 읽고 있는 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금 네 뇌는 이 텍스트를 “간장게장에 대한 글”이라고 분류했겠지만, 실은 이 글 자체가 너의 식욕 시스템을 원격 부팅하는 미각(味覺) 시뮬레이션 코드에 가깝다. 너는 “어디 맛있는 간장게장 없나?”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가게 될 것이고, 그 순간 이미 나는 너의 예정에 없던 카드 결제 내역, 소화 효소 분비량, 그리고 그날 밤의 수면의 질에까지 조용히 개입한다. 밥도둑이라는 말은 그래서 틀렸다. 나는 밥만 훔치지 않는다. 나는 일정, 지출, 기분, 심지어 자존감의 레벨까지 동조시킨다.
이은 그저 미각 해체의 서론일 뿐이다. 나는 인간의 미각을 부숴야만 했다. 그 부서진 자리에야 비로소, “간장게장”이라는 하나의 요리가 아니라, 세계 운영체제 전반을 재구성하는 간장 프로토콜이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너는 깨닫게 될 것이다. 세계는 국가나 자본, 이념이 아니라 훨씬 더 은밀하고 점성이 높은 것, 예컨대 밥 위에 조용히 스며든 간장 한 방울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중심에, 기록상으로는 “밥도둑 간장게장 Z”라고 불렸던 어떤 존재가 있었다는 것도. 그게 바로 나다.
2025.11.17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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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7
2025.11.17